얼마 전, 조금은 과격해 보이는 발언을 했다. 그것도 국내 굴지의 광고 대행사 직원들 앞에서.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힘들다구요? 과연 그럴까요?"
미국에서 곤두박질 치는 모습과 비교해서 그다지 나쁜 상태는 아닌 것 처럼 보인다. 이미 미국 신문광고 시장은 1995년 이전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언론사의 상태를 굳이 비교하자면, (많은 언론사 종사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좀비 상태다. 이미 이자를 갚지 않아도 사실상 은행에 빚독촉 같은 것을 잘 받지 않는 이상한 권력 집단임에도 자금의 선순환이 막혀 있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런 이런 좀비들은 누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바로 당신들이 좀비 언론을 만들고 있다"고 광고 대행사 직원들에게 말했다. 아니 지금까지 4, 5년 동안 수많은 언론 홍보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지적했다.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는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사실 그들에게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 언론사 종사자들이 '떳떳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언론사 종사자라면 무슨 쓰레기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냉철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지금껏 애써 외면한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어렵게 몇 년 버티다 무너져 내릴 것을 알면서도 '기자'라는 허울좋은 권력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우린 얼마나 많은 내적 외적 희생을 치르고 있는가.
낮술에 쩔어 살면서도 언론사 기자라는 이유로 위안을 받고, 자사가 벌이는 행사에 수백만원짜리 입장권을 받아들고 홍보담당자들에게 멋적게 내밀면서 강매 아닌 강매를 한다. 형제 부모 집에 신문 몇 부씩 넣으면서 신문값을 대신 내주고 팀장 정도되면 50부 100부씩 업체 담당자들에게 돌아가며 밀어넣고는 부수확장대회 때만 되면 다시 전화를 들고 머뭇거리는 기자들. 광고가 끊겼는데 알고보니 경쟁 매체에는 광고가 들어간다며 그쪽 기자들은 힘이 센가보다라며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며 압박하는 광고부 직원들이 얄밉다가도 광고주에게 그 울분이 전이되는 일은 당연지사가 되었다.
지금 언론사들의 악순환 구조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 좀비 언론만 양산하게 되고 그 좀비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정보 경쟁력을 파먹게 될 것이다.
지난해 국내 26개 종이신문사들의 총 부채규모는 1조8314억원으로 조사됐으며 중앙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3개사의 부채가 전체 부채규모의 51%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이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국정감사자료를 제출받은 자료의 일부다.
기가막힌 것은 작년 이들 전체 신문사의 총 매출 규모는 1조9685억원으로 부채규모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놀랍게도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사들은 흑자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선방했다고 자평해도 될만할까.
자료 :
[2010국감]부채많은 언론사 `중앙-동아-서울順`[이데일리]
지난 주 15일 한국광고주협회와 광고학회, 광고단체연합회는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고 대부분의 광고주들이 신문광고를 집행할 때 불합리한 광고 강요 및 협찬 경험 때문에 곤혹스러웠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0명의 광고 및 홍보담당자를 대상으로 '신문광고를 집행할 때 불합리한 광고 강요 및 협찬 경험이 있는가'를 묻자 응답자 모두 '있다'라는 100% 통계치가 나왔다. 그리고 50명의 응답자 가운데 '신문광고 집행 시 구매의사와 관계없이 집행 된다'고 답한 비율이 50.3%였다. 더구나 신문광고 거래관행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묻는 항목에는 무려 98%가 심각한 편, 심각함, 매우 심각함으로 답한 반면 '보통'이라고 답한 이는 단 한 명(2%)에 불과했다.
인터넷 광고에 대한 불만도 광고주들 사이에선 팽배하다. 광고주협회의 광고주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광고 및 협찬 거부 시 허위 및 음해성 보도 △왜곡·과장·선정적 기사로 광고 강매 △기사를 써주고 나서 광고 게재 권유 등의 다양한 광고 압박 유형이 제시됐다. 이런 광고 강매 현상의 원인으로는 △인터넷매체의 부실한 재정상태 △매체의 과도한 난립 △사주의 비윤리적 경영 등이 우선순위로 꼽혔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 중 거래관행 폐해가 가장 큰 곳으로는 독립 인터넷신문(42.0%), 기타 인터넷신문(30.0%), 신문사 종속 인터넷신문(22.0%), 주요 포털사이트(6.0%)의 순으로 나타났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 바란다.
광고주 "신문광고·협찬 강요받아봤다" 100%[미디어오늘]
광고주단체 “인터넷 광고 폐해 심각”[기자협회보]
재미있는 것은 이런 내용은 광고주들이 언론사의 영리행위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괴롭힘을 받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치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언론사의 지나친 광고 의존도와 광고 수주 관행이 온 오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언론사들의 눈은 '전반적인 문제'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광고주협회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의존할 따름이다.
광고주협회, 인터넷 유사언론 피해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한국광고주협회]
어찌됐든 이런 불합리한 광고집행에 대한 관행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는 단순히 '협박하면 바들바들 떨 정도로 취약하고 허약한 기업'을 불쌍하게 보는 사람도 있고 '협박당할 정도로 뒤가 캥기는 기업'들을 오히려 흘겨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놔두고 볼 문제도 아니고 거꾸로 바깥에서 이 문제를 들고 후벼파기 시작하면 사이비언론을 때려잡는 시늉을 하며 언론을 통폐합시켜버려 수십년 동안의 골칫덩어리 문제를 만들어버린 언론 통폐합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광고주협회는 이런 대안을 제시했다.
광고주협회가 제시한 대안은 △인터넷신문사 설립 및 진입요건 강화 △사이비언론 위법행위 평가 법률안 검토 △3진아웃제 등 민간차원 규제방안 등이다.
딱, 5공 정부를 다시 무덤에서 되살리자는 의견이다. 이런 건 대안이 아니라 그냥 인터넷 언론이 '귀찮다'는 식이다. 무시하기도 뭐하고 그냥 받아주기에도 스트레스 받는 양태인 것이다.
요즘 인터넷 언론사들, 특히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들어가는 언론사들의 클릭 장사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단가표도 돌아다닌다. 주요 매체 언론사가 포함돼 있고 네이버 등 포털에 광고성 기사를 같이 송고하는 조건이 단가를 올려 받는 조건이라며 언론사 출신 사장은 제안서를 기업 홍보담당자에게 들이민다.
클릭 장사를 못하면 '까기' 장사에 돌입한다. 기업들의 제품, 서비스, 사주 등과 관련한 악성 루머를 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또는 작은 사실을 크게 부풀리고 다른 경쟁사를 띄우면서 일부러 홀대하거나 장점을 축소하고 약점을 강조하는 등의 '기술'이 발휘되기도 한다. 일단 기사 검색에 걸리면 자사 기사를 모니터링하는 업계 담당자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업체 홍보나 광고 담당자들은 온라인으로 퍼지는 자사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막거나 피하거나 희석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았으니 당연히 그 기사가 거짓이어도, 심지어 조작되고 과장되었다고 기자들이 실토를 해도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언론 앞에 당당한 기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담당자들의 소심함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응 방법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울 수도 있다.
당당해지는 것이다.
차분하게 보도의 내용을 살펴보고 잘못된 것일 경우 직접적으로 자사 블로그에 반박하고 해명하며 스스로 반성해야 할만한 일이라면 얼른 인정하고 사과하고 후속 대응에 대해 계획을 밝히면 된다. 이러면 비난과 비판에 몰입하는 기자들조차 더 이상 꼬투리를 잡기 힘들다. 대부분의 경우 '논란' 정도만 있어도 업체나 대상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언론사들조차 '사과'와 '책임감 있는 대처'에는 딱히 꼬투리를 잡기 힘들다.
광고를 달라고 생떼를 쓰는 언론 기업에는 더욱 광고를 주면 안 된다. 비판기사를 싣는 곳에 광고를 미끼로 언론사를 길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거짓'과 과장 왜곡을 일삼는 언론사에게 광고를 주지 말고 고사하도록 눈 질끈 감고 놔두자는 말이다. 이건 언론탄압이 아니다. 왜 당당하게 그 일을 하지 못하는가.
무엇보다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사이비 언론이나 어설프게 기업을 손보려는 언론과 정면승부를 보는 장면을 상상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사이비 언론이라도 활용해야 할만큼 홍보에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투덜대지 말자. 광고주 당신들이 좀비를 양산시켜왔다. 지금와서 좀비들이 귀찮다고 말하지 말자.
얼른 좀비들을 청산해주어야 제대로 된 기자들이 제값 받고 일하고 더 저널리즘에 충실한 언론사들이 독자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고 더 미래지향적인 언론사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언론이 살아남고 쓰레기 언론사들이 무너져야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한 당당한 언론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래야 믿을만한 기업 활동의 일부로 광고가 집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