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그렇다. '언론이 말하지 않는 경제 위기의 진실'. 그런데 사실 내 경험상 이렇게 바꿔주어야 할 거 같다. '언론도 속고 있는 경제 위기의 진실'.
왜 그러냐고? 언론도 함께 속이고 있거나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만일 언론이 진실을 이미 알고 전세계 금융 흐름의 어이 없는 움직임을 꿰뚫고 있다면 지금 언론사들의 침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게임 룰을 아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그들도 동반 침체를 겪고 있지 않은가. 무엇 때문인가. 언론도 속고 있는 것이다. 시장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 전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블로거로도 활발한 고수민님이 "
은행이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는 진실"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무려 100건이 넘는 엄청난 댓글과 트래픽 폭격을 겪어야 했다. 이미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그림자에 대한 호기심에 이런저런 책(
[책]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그림자는 누구인가)을 읽은 나로서는 그다지 충격적일 것까지는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댓글중에는 여전히 이런 금융계의 공공연한 비밀을 '음모론'이란 모든 논란을 덮어줄 편리한 무기로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식자'들을 만나게 된다. 정상적인 화폐사나 금융사 책을 권한다는 어설픈 충고와 함께. 하지만 이미 수많은 (정상적인?)책에서도 FRB와 지급준비제도와 같은 인류 역사상 종교 다음으로 큰 맹목적 믿음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돈이 오갈 때 발생하는 '이자' 때문에 인류의 경제는 실물과 금융이 서로 괴리되는 시점을 맞이하게 된다. 상상을 해보라. 우리나라는 이미 내년 국가 채무로 인해 물어내야 하는 이자가 '20조원'에 육박한다. 20조원이면 4대강 하겠다고 덤비는 정부도 눈치 봐가며 책정해야 할 예산 규모다. 이 돈이 그냥 계좌이체 되어 사라질 돈이다. 상상이 가는가. 우리가 열심히 국가에 세금을 냈더니 그냥 쓰지도 못하고 사라질 돈 20조원으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돈의 행방을 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는 많다. 아니, 제아무리 똑똑한 언론이라도 이런 식의 글을 쓸 수는 없다.
'지폐'가 처음에는 금을 바꿔주기 위한 지급보증 수단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 의미만 남아 있을 뿐 금이나 은, 또는 적절한 가치로 교환될 어떠한 보증도 받지 못하는 돈이 된다.
1US달러 지폐에 찍힌 문구의 변화로도 쉽게 알 수 있다. 1928년 발행된 1달러 지폐에는 이렇게 써 있다.
은워런트. 이것은 1은달러 주화가 미국 재무부에 공탁되어 있고, 이것을 제시하는 자에게 지급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1953년 발행된 지폐에 쓰인 문구는 이보다 단순하다.
미국은 이것을 제시하는 자에게 1달러를 지급한다.
이미 더 이상의 모든 지폐에 공탁이 보증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US달러 지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만 써 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 안에서 (In God we trust)
그건 미국 재무부의 아주 기막힌 블랙유머를 보여준다. 실제로 이 지폐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 69쪽
지폐가 천천히, 또는 아주 급격하게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가치가 0으로 수렴되는 종이쪼가리가 되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그리고 달러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이거다. 그러니 위기 상황이 닥치자 마치 선심쓰듯이 그동안 환률에 의해 돈의 가치를 주고받았던 미국이 조건없이 달러를 바꿔주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전세계는 달러가 보증 받지 못하는 미국 민간 은행들의 거래 명세서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라크와 베네수엘라, 이란은 달러로 받던 석유 대금을 유로화나 엔화 등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들의 운명은 미국에 의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뭐? 독재와 대량무기확산 때문이라고? 왜 이러시나. 유치하게 아마추어같이. 그럼 이건 알고 있는가? 2002년 북한이 공개적으로 외환보유고를 US달러에서 유로화로 바꾸자, 그 결과는 '악의 축'으로 분류되었다(75쪽)는 사실을. 물론 행동을 취하고 이유를 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금과 은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위해 언급하지 않겠다. 기가 막히고 말 것이다. 단지 마법과 같은 복리효과를 누리고 있는 곳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은행뿐이라는 점은 말해두고 싶다.
요셉의 1페니히(100페니히=1마르크) : 약 2000년 전에 요셉이 아들 예수를 위해 1페니히를 투자했다면,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자산을 갖게 될까. 자그마치 순금으로 된 지구 2,950억 개. 좀더 큰 덩어리라면 88만 8천 개의 순금으로 된 태양을 갖게 될 것이다.(268쪽)
<언론이 말하지 않는 경제위기의 진실>은 이미 2008년 11월쯤 독일에서 발간된 책이다. 그래서 현재를 비교해보기에 어색할 수도 있고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마치 미네르바 처럼, 또는 시골의사 박경철씨 처럼 독일에서 거침 없는 경제관련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책이 속시원하게 읽힌다.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고 지나치게 세속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먼 세상 이야기 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다만 시점이 경제위기가 최악을 달리던 2008년의 시점이 도드라져서 늦게 읽으면 너무 낡은 책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을 거 같다.
그나저나 번역서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아주 개떡이다. '언론'은 그냥 조연도 엑스트라급 정도 밖에 안 나오는 것을 제목으로 넣다니 어이 없다. 원제는 끝까지 가다보면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는 길을 말하는 '충돌코스(Crashkurs)'이다. 원제가 훨씬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언제가 멈추지 않으면 전세계 국가는 자신들의 1년 예산 전부를 이자 내는 데 써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