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택 화백이 돌아가셨네요. 향년 55세.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가운데 지병인 위암 때문에 사망했습니다.
제게는 참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신 분이죠.
김상택 인물검색 [
야후][
위키백과]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조인스닷컴을 갔더니만 사이트가 아주 엉망진창이군요.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서 버벅거리다가 결국 검색으로 찾아 들어갔습니다. 메뉴에도 김상택 만평 꼭지가 없네요.
링크는 있는데 메뉴에 편성이 안 돼 있군요.
나중에 이 링크가 살아 있을지도 의문스럽네요. 파이어폭스로 들어가니 광고를 끌 수도 없고 오른쪽 쇼핑 광고란과 아래 링크 광고는 글자 깨지고 아주 난리군요. 사이트를 어찌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쯧.
어쨌든 김상택 화백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제가 대학다니던 시절 경향신문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그림체가 상당히 색달랐다는 느낌을 받았고 비유가 매우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모습을 보여 젊은 제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렇다고 해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 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향신문으로서는 소중한 만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그를 경향신문에서 놓치고 말죠. 경향신문 관계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회사가 쓰러질 때까지 붙잡아 두어야 할 사람'으로 김상택 화백을 꼽을 정도로 매우 안타까운 이직이었습니다. 언론계에서 자기 이름 석자를 놓고 이적비를 추가로 받은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등재됩니다.
더 안타까왔던 것은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긴 김상택 화백이 놀라울 정도의 노선 변경을 노골적으로 실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체는 더욱 복잡해졌지만 내용은 단순해졌고 대부분 'TV화면'이 등장하거나 정치의 세계를 왕과 신하 등 왕조사회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의 의아해하다가 역시 '회사의 논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나중에는 정말 오바스럽다고 할 정도의 노골적인 보수 색깔과 반북 노선, 반 개혁 논조를 펼치면서 연신 개혁진형과 북한, 그리고 심지어 물건너 대통령인 오바마까지도 조롱하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요즘 들어서 그가 '전향' 내지는 '자기 색깔에 안착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를 "만평가가 아닌 삽화가"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나봅니다.
김 화백은 98년 경향을 떠나 99년부터 지난달 19일까지 중앙에서 만평을 그려왔다. 김 화백은 자리를 옮긴 뒤 경향에서와는
다른 ‘색깔’의 만평을 그렸는데, 이에 대해 일부 시사만화가들은 “시사만화가의 ‘논조’가 소속 신문사에 따라 바뀐다면 그는
‘삽화가’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날카로운 화풍만큼 예리한 풍자[미디어오늘]
사람들은 아직도 착각하는 것 같네요. 마치 그가 회사의 강압이나 회사로부터의 눈치를 봐가며 타의에 의한 '삽화'를 그렸다고 '추측'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의지를 이렇게 '타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다분히 음모론적인 사고일 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로 묘사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제가 아는 보수 신문의 종사자 대부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자신들이 회사에 끌려다니는 사람으로 자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상당한 자부심으로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부끄러워하라며 강요해봤자 그들은 그런 외부의 강요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시사만화가가 자기 소속을 바꾸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가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전향'이나 '변절'이 아닌 '성숙'이나 자연스런 '변화'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삽화로 깎아 내리는 것에는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가 변하게 된 계기나 원인이 무엇인지 저도 모릅니다. 다만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의 근본적이고 질적인 근무환경의 차이라거나 종사원들의 집단 정서의 차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는 지인들의 변화 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상택 화백 사망과 관련해 조금은 오래된 글을 두 가지 엮습니다.
▶김상택 만평의 한계 [인물과 사상 0406][capcold]
▶2007/11/10 기자들은 왜 편집정책에 동조하는가? [Ring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