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 띄우기 SBS 혼자 고군분투

Column Ring 2008/04/08 00:54 Posted by 그만
SBS가 외롭지만 뜨거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100억 프로젝트.

우주인의 선발과 우주인 훈련과정, 그리고 역사적인 우주인 탄생, 그리고 귀환까지의 과정을 담기 위해 SBS가 밀착 보도하기 위한 돈이다.

결연한 의지를 다음 동영상에서 느껴보자.

▶SBS 우주생방송은 '100억 프로젝트' [노컷TV] 2008.03.24


배 국장은 “SBS는 이번 한국인 최초 우주인 방송의 주관방송사를 하기 위해 순수예산 100억을 투자했다”면서 “우리는 이번 방송을 ‘100억 프로젝트’라 부른다.



물론 이 내용은 다른 방송사나 주요 언론사에서 받아 써주지도 않았거나 단신 처리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배출 과정에 SBS가 너무 깊숙히 개입한 나머지 다른 언론사들이 '의도적 배제' 전략을 오랜만에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 배제'는 자사의 이익이나 논조에 맞지 않거나 자사가 설정하는 의제와 맞지 않는 의제가 부각되더라도 게이트키핑을 거쳐 아예 취재 조차 하지 않거나 주인공 일부를 아예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 언론계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심지어 공격적으로 상대방을 미디어 비평을 통해 비판하거나 신생 미디어의 부상을 막는 행동들도 '의도적 배제'의 범주에 넣는다.

이번 건의 경우 SBS는 사운을 걸고 12일간의 방송 이벤트를 위해 100억을 쏟아붇고 있는 동안 다른 방송사에서는 이에 대해 시덥지 않게 보도한다거나 중요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구사한다.

다음은 SBS의 메인뉴스에 등장한 우주인 관련 보도다. 발사 전날 방송분이다.

2008.04.07 [SBS 8시 뉴스] 우주인 관련 보도

▶한국 우주인 시대 열린다…소유즈호 내일 발사
▶소유즈호에 연료 주입…"이제 발사만 남았다"
▶이소연 "나는 한국의 딸"…해외언론 관심 집중
▶"우주비행 자신있다" 팀워크 돋보인 기자회견
▶"이소연에게 행운 있기를" 우주 선배들의 격려
▶"우리 딸, 잘 다녀와"…이소연 향한 응원 물결
▶소유즈 발사 하루 전, 우주관제센터도 이상무!
▶발사에서 귀환까지…우주에서의 12일 일정은?
▶이소연이 실제 탑승할 본체는 7m의 좁은 공간

--------<중간 다른 뉴스>-----------

▶선발에서 D-1까지…한국 첫 우주인 탄생 과정
▶이소연은 어떤 사람?…친화력 갖춘 '슈퍼우먼'
▶한국 우주개발 진두지휘한 '항우연'도 기대감
▶'한국 첫 우주인 배출'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장하다 이소연!"…광주시민들 자부심 한가득
▶발사·도킹·귀환까지…한국 최초 '우주 생방송'
▶이 대통령-푸틴 "한국 우주인 탄생 협력 감사"

어마어마한 집중력인데다 대단한 아이템 발굴력이다. 기자들 고생 좀 했겠다.

그런데 다른 방송사는 어떨까.

MBC는 단 한 건의 보도만 짧게 나갔다.

한국인 우주선 내일 발사 [MBC 다시보기] 2008.04.07

스트레이트로 무미건조하게 사실만 보도한 셈이다. 이 역사적인 장면은 어디서 볼 수 있는지조차 말해주지 않는다. '의도적 배제'다.

KBS는 오히려 찬물도 끼얹는다. 260억원 가운데 160억원은 정부 돈인데 나머지 100억을 낸 곳에서 사실상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면서도 그곳이 SBS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드디어 내일 ‘우주의 꿈 쏜다’ [KBS 뉴스9 다시보기] 2008.04.07
상업적 행사 전락 우려…‘참뜻 살려야’

이 찬물 속에 등장한 말이 이 보도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노골적으로 말해준다.

뒤처진 우주개발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홍보 행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전체 사업비 260억 원 가운데 160억 원이 사실상 정부 돈인데도 정부기관이 사업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정부 예산은 일부만 투입하고 나머지는 지원받다 보니까, 상업적인 요소가 첨가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본질이 흐려지게 된 거죠."


KBS와 MBC가 SBS의 의제 설정에 전혀 도움을 주거나 추종하지 않는 모습인 셈이다. 긍정적인 뉴스임에도 함께 띄워주기가 일상화돼 있는 상황에서 경쟁 매체의 이벤트에 도움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명백한 의도이다.

타사는 '유령 매체'
10여 년 전, 우리나라 보도 관행 중 아주 몹쓸 관행이 있었다. 이른 바 '의도적 무시', '타사 익명 처리'가 그것이었다.

타사가 의제를 설정하면 의도적으로 비켜가거나 반대 논리를 의제로 역제시하는 모습은 다반사였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반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방송광고 독점권 및 신문방송 교차 소유 및 겸영에 대해 극명하게 갈린 신문과 방송사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일부 언론에서는', '국내 한 신문사는' 따위의 익명 제시로 내가 반박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시청자나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신문사간 지국 경쟁이 치열해질 때쯤 칼부림까지 등장한 시절에도 조선과 중앙 두 신문은 상대방 신문사 이름을 구태여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둘 다 'ㅈ' 신문이니 'C신문', 'J신문' 따위의 이니셜 보도까지 등장했을 정도니 경쟁 매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심지어 타 신문의 보도를 인용하면서도 '국내 언론에 따르면' 따위로 처리하기를 밥먹듯이 했다. 외신에서는 어디 시골 촌구석의 1만부도 안 되는 매체의 내용을 배껴 쓸 때랑은 천지 차이의 대우인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과 '여론매체부'의 활약은 매체 실명 비판의 새 장을 연다. 그리고 신문의 전통적인 매체 비평 영역은 다시 방송으로까지 확대 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MBC에서 2001년 4월 '미디어 비평'이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신문과 방송의 상호 비평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역사적인 프로그램의 메인MC가 바로 손석희 교수다. 이후 인터넷의 발달과 포털의 성장, 그 사이에 있었던 오마이뉴스의 창간과 시민기자들의 거침없는 매체 비판은 매체도 비판 받거나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요즘은 서로 잘잘못을 따져가며 싸울 때가 많다. 지금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오래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언론사들끼리의 상호 비판을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상대방의 잘못에 눈을 감아 줄 때도 있다.

오랜 동안 신문사는 신문사들끼리, 방송사는 방송사들끼리 열심히 뭉쳐가며 서로의 영역을 지키는 '동업자 의식'을 발휘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서로 상호 비판하기 어려워하는 이런 '동업자 의식'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친절한 동업자'가 아닌 '서로 무시하는 동업자'인 이들에게 '자사 이익'이야말로 당장이라도 지켜내야 할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명분이나 거대담론을 잃고 미디어 철학마저도 자사 이익에 우선하지 않는다. 자사가 올림픽 예선 중계권을 확보하면 '쾌거'라고 하고 타사가 확보하면 '이기주의'라고 몰아간다.

자사가 우주인 탄생 과정을 독점 방송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면 '역사적인 사건'이 되고 타사가 확보하면 '그저 그런 뉴스', 또는 '홍보 행사로 전락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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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8/04/08 00:54 2008/04/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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