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건 기사의 제목을 보고 기사 내용을 유추하거나 기사 내용을 함축하고 요약해 기억하는 데 활용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제목만으로도 노대통령의 발언 자체에 대한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사 제목은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창작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기사 제목도 '저작권'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최근 화제가 된 판결을 전한 기사들을 살펴보자.
그만이 생각하는 정답을 일러주기 전에 기사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들을 살펴보자.
- 판결의 주체 유무.일부 신문은 판결의 주체를 밝힌 곳이 있고, 판결 주체를 밝히지 않고 일반화시키는 곳도 있다. 판단의 주체가 빠지면 대부분 기사 내용이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다.
- 행위의 구체성.사건 기사에서 제목은 한정된 글자수로 행위의 구체적인 정황을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어느 곳은 1대1 대화, 어느 곳은 블로그 비밀대화, 어느 곳은 인터넷 비밀대화 등으로 이 사건의 내용을 설명하려 했다.
- 판결 내용의 압축성.판결 내용은 누가 어떤 행위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종합적으로 알려주는 것으로 제목의 핵심 키워드다. '~도 명예훼손 성립 가능'이란 풀이가 대세다. '~도'란 조사에 주의해야 한다. 판단은 일반화되기에는 구체적인 정황에 따른 판결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최악의 제목과 차선(최선은 없으므로)의 제목을 뽑아보자.
최악의 제목 :
‘인터넷 비밀대화’도 막말은 안된다동아일보 - 2008년 2월 15일
이유는 이렇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지나친 일반화로 흘렀다. 사건 내용에 '막말'이라는 행동이나 어휘 자체가 포함돼 있지 않다. '비방' 정도이면 모를까 막말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어휘 구사이므로 적절치 않다. '막말'로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전제조건인 인터넷 비밀대화로 제 3자를 비방한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
'인터넷 비밀대화' 역시 행동의 구체성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이 제목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서 '비밀대화라도 타인에게 전파될 개연성을 따져야 한다'는 내용과도 배치된다. 즉 누구나 막말은 안 되는데 '인터넷 비밀대화도 안 된다'는 포함관계의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띄어쓰기도 틀렸다. '안된다'가 아니라 '안 된다'가 맞다. 금지의 표현으로 쓰인 것으로 '아니 되다'의 준말인 '안 된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차선의 제목 :
인터넷 1대1 대화도, 명예훼손 성립 가능
매일경제 - 2008년 2월 15일
그렇다면 왜 매일경제의 이 기사 제목을 차선으로 꼽았을까. 일단 행위의 주체가 '대법' 또는 '대법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적으로 제외할 개연성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여기서 '대법'이라는 판단과 발언의 주체가 들어갔다면 더 좋겠지만 그만큼 글자수가 늘어나니 불가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행위의 구체성 부분에서 인터넷 1대1 대화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일반화를 경계하기 위한 '~도'라는 조사와 쉼표를 사용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더 '특수한 경우'나 '예외적인 사례'를 표현하기 위해 '성립 가능'이라는 술어를 택해 안전망을 2중으로 쳐놓았다.
'1대1'이란 부분에서 약간 갸우뚱거리게 되는데 일단 넘어가자. 숫자와 한자어의 띄어쓰기는 나중에 좀더 신중하게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겨레의 대법 “인터넷 일대일 대화로도 명예훼손 성립” 이란 기사 제목도 백중세를 이루긴 하지만 내용상 '특별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일경제 기사 제목을 차선으로 선택했다.
제목, 그것도 사건이나 판결 등 사회적인 파장이 예상되는 기사의 제목은 좀더 신경써서 지어야 한다. 글쓰는 직업, 이래저래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