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영역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영원히 풀지못하는 숙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패러독스(Paradox), 역설이라고 말하지만 가장 근사한 번역은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어감상 가장 가까운 말인 듯 싶다. 그리고 딜레마(dilemma) 역시 딱히 직역은 어려우나 '진퇴양난(進退兩難)'이 가장 어울린다.
자, 미디어 영역과 우리 생활 속의 패러독스와 딜레마부터 들어가자.
1. 사람들에게는 선택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2. 욕구가 해소되면 행복감을 느낀다. 3. 선택권을 줄 수록 사람들에게는 욕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므로 행복해진다. 4. 선택권을 차츰 늘려나갈 수록 어느 지점부터 만족감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공중파 3, 4개 채널로 모든 미디어 소비를 하던 시절에서 십수년을 건너 뛰어 미디어 채널이 폭증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한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채널 몇 개로 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미디어 채널이 폭증한 현재는 행복한가?
여기서 '선택의 역설'이 시작된다. 선택권을 받은 사람들은 더 혼란스러워하고 옛날을 그리워하며 선택권이 제약받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선택할 수 있는 양을 늘려가면서 어느 일정한 수준이 넘어가자 사람들은 선택의 고통을 느끼고 행복감은 오히려 떨어지고 만족감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실제로 더 부자인 나라가 더 행복한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고 주어진 선택 사항들을 빼앗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선택할 대상이 너무 많아 불편해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 선택권을 제한하고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을 제약한다면 사람들은 반발하게 돼 있다. 자신의 선택권이 침해받았다고 생각해서이다.
당신이 미디어 정책을 펴야 하는 사람이라거나 미디어 사업을 펼쳐야 하는 사업가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RSS 배포에 대한 제어권을 갖고 싶어하는 신문사 자회사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읽혀야 하는 신문사의 논리가 어긋나고 있다. 한겨레신문기자와 인터넷한겨레 직원의 입장은 다르다. 조선일보 직원과 디지틀조선일보 직원과의 입장 역시 또 다르다. 많은 신문사 직원과 그 자회사 직원의 인식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 한 몸이다.
콘텐츠가 배포될 수 있는 미디어가 제한적일 때는 독점 또는 종속적인 관계 때문에 사업자들끼리 분쟁이 잦다. 경쟁사를 만들어서라도 제한적인 선택권을 분산시키고 해체시키려 할 것이다. 신문사들이 방송 겸업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더 많이 배포하고 그로 인한 수익과 영향력을 얻기 위함이다. 지금의 미디어 시장은 사실 신문과 방송의 겸업이 금지돼 있다고는 하지만 케이블 종합/보도채널과 공중파 방송의 겸업을 금지하는 수준이다.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콘텐츠를 배포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신문사들이 수십개의 사이트와 기업들에게 콘텐츠를 팔고 있다. 신문에서만 보던 콘텐츠는 이제 RSS로도 배포되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하지만 신문사와 신문사닷컴은 여전히 괴롭고 난감하다.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신문사닷컴은 종이 신문사의 수익 영역이 겹쳐 있다. 둘이 함께 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으면 내 형제는 못먹는 시장이다. 그렇다고 인터넷과 뉴미디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종이신문과 신문사닷컴이 죽어도 죽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포털은 또 어떠한가.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게 하고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족족 실패하고 있다. 사람들은 쓰던 것만 쓴다.
사용자들이 사용해오던 기능 역시 너무 제한적이라는 비난에 좀더 기능을 많이 만들어 붙이려고 각고의 노력을 들이지만 결국 새로운 기능이나 추가 기능 대부분은 잊혀지고 사용률도 낮아진다.
포털, IPTV, 신문, 방송, DMB, 케이블, 잡지, 무가지, 웹진, 게시판, 블로그, 인터넷 동영상.. 수많은 미디어가 우리를 둘러싸고 관심을 가져달라며 손짓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24시간 밖에 없다. 다른 선택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제한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은 곧바로 다른 선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 것이 상대적 불만족의 원인이며 행복감을 빼앗아 가는 이유다.
그렇다고 있던 것이 없어진다거나 주었던 것을 빼앗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것이 공중파 방송 시청률에 대한 패러독스다. 특히 공중파 공영방송인 KBS, 한국방송은 품질 높은 콘텐츠, 다큐멘터리, 공영성을 강조한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저조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시청률을 높이는 공식은 이미 방송가 종사자들은 알고 있다. 유명인을 기용해서 가벼운 주제로 담화를 나누면 된다.
수십억원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더니 시청률이 고작 10% 미만이고 수천만원 정도의 제작비를 들여 잡담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시청률이 무려 40%에 육박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공중파는 공공재다. 따라서 공익적이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둘이 함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볍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주로 소비하면서 공익적이 내용이 없다고 비난한다. 정작 공익적인 프로그램은 외면한다. 소비자는 자발적인 비선택에 대해 스스로 관대하며 이는 효율성과는 정반대의 결과다.명품 소비에 대한 어떠한 변명을 갖다 붙여도 근본적인 이율배반의 시장은 있게 마련이다.
P2P는 개인의 정보 공유와 커뮤니케이션 양을 폭증시켰지만 콘텐츠 산업을 붕괴시키는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있다. 뉴스 댓글은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개인들의 의사 표현을 손쉽게 만들어주었지만 갖가지 해악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블로그가 많아지고 있지만 읽을만한 콘텐츠를 찾기 더 힘들어졌다. 언론사는 많아지고 있지만 언론의 영향력은 떨어진다. 더 많은 기자들이 더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좋은 기사들은 묻히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비는 올라가고 있지만 시청률은 떨어지고 있으며 광고 효과도 급락하고 있다. 통신 수단은 많아지고 편리해지고 있지만 높아지는 통신비가 부담스럽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2008년을 그만은 '미디어 패러독스로 인한 딜레마의 해'라고 표현하겠다. 이 딜레마를 풀어내고 패러독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수많은 사업자들이 노력할 것 같다. 그러나...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경차보다는 중고차라도 대형 세단을 몰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변덕과 불합리를 꿰뚫을 수 있을까?
먼저 이 글과 엮인 글을 먼저 소개합니다. 2008/01/19 미디어 패러독스, 미디어 딜레마 이 글에서 그만은 미디어 산업의 고유한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최근 민영 미디어렙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는데 이게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와는 별개로 방송가에서는 지난 십 수년 동안 뜨거운 감자로 이어져 내려왔던 이슈였습니다. 이 민영 미디어렙 문제가 미디어 딜레마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죠. 일단 미디어 '랩'이 아니라 '렙'입..
미디어는 단순 소비재의 개념을 넘어서는 공공성이 가미되기 때문에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어떤부분은 적자폭이 있더라도 진행해야될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 표현이라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이율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언어,글등에서 멀티미디어까지 의사소통이라는 전제에서 도구 자체가 완벽한 의미의 전달이라는 것은 이론적인 추구는 분명 존재하지만 도구의 한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을 유도하고 공론화 시키는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끔 관심있는 분야인 촬영기기를 다루는, 이름만대면 알수있는 매체들에서 객원리뷰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얼토당토않은 개인주관(단점은 감추고 장점만 나열된 해당 회사 홍보자료보다 더심하고 근거없는 칭찬일색)적인 견해들을 공적인 매체에서 보여줄때는 짜증이 아주 한없이 날때도 있습니다.차라리 종이신문에서 기획광고라고 상단에 살짝 써놓고 나열한 것은 애교로 봐줄정도로 심해지는 풍토의 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으로도 언론중재위원회같은 기능을 하면서 오보를 제어하고 공론화하는 커다란 커뮤니티나 공공포털등의 서비스를 해주는곳 없나 혹은 해볼까 상상하던 적도 있었지만... 능력부족으로..
공감하다 못해 감정이입까지 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미디어 종사자로서 님의 글에 표현된 처럼, 곳곳에서 정말 많은 패러독스와 딜레마에 빠집니다. 대중의 이중적인 잣대. 님께서 언급하신 것 처럼 시청자의 반응을 높이고 시청률 올리는 작업은 대중이 생각하는 공공재로서의 프로그램 만들기 보다 쉽습니다. 여기서 딜레마인것은 공공재의 역할이 강조되다 보면 시청률 저하와 제작비 압박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이중적인 잣대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나름 이런저런 고민을 합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선택권이 커진 이 시대에 미디어 종사자는 어떤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임할 것인지를 놓고 말이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민의 단초에 도움이 됩니다.
미디어와 인터넷 산업전반에 사용자 Attention의 희소성에 대한 위기는 업계 종사자라면 하루가 다르게 체감하고 있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 현실은 차지하고라도, -그만님도 본문중에 은연중에 내비쳤다시피- 유독 우리의 '미디어'에만 근본적인 이율배반의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인식을 지배하는 가장 가까운 진리는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바로 '부조리'입니다. 제가 한 이야기는 아니고...^^ A. 카뮈가 그랬죠.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를 바로 부조리라고 규정했죠. 문제로 인식하셨던 부분에 대한 답은 저도 그만님도 카뮈도 못 드릴겁니다. 대신 원리를 아셨으니 고민이라도 해소하시길 바랄뿐입니다. 다행스러운것은 카뮈도 덧붙혔듯이 '부조리한 세계에 대래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회복한다'고 했으니... 현실에서도 그 '가치' 추구를 고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원래 우리는 부조리하고 부조리하며 부조리하게 살고 있다고 인정하면 조금 편해 지실 것 같습니다.
A. 카뮈의 말이 내포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요. 이미 정해진 결과가 있다거나 이미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도전하는 인간들. 인간들 스스로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또 다른 시각이겠죠. 좋은 말씀 감사하구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지만 다행히 그렇게 아는 것이 늘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 전반을 지배하지는 않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역설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
2008/01/19 12:11정말 이율배반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듯 합니다.
해야하는데 하게되면 자기는 손해고 그렇다고 하지않으면 안되고 하는.. --;
난감한 상황은 계속 되겠죠. DMB의 딜레마가 그렇듯이 말이죠.
2008/01/20 23:30미디어는 단순 소비재의 개념을 넘어서는 공공성이 가미되기 때문에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어떤부분은 적자폭이 있더라도 진행해야될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2008/01/20 16:38원론적으로 표현이라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이율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언어,글등에서 멀티미디어까지 의사소통이라는 전제에서 도구 자체가 완벽한 의미의 전달이라는 것은 이론적인 추구는 분명 존재하지만 도구의 한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을 유도하고 공론화 시키는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끔 관심있는 분야인 촬영기기를 다루는, 이름만대면 알수있는 매체들에서 객원리뷰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얼토당토않은 개인주관(단점은 감추고 장점만 나열된 해당 회사 홍보자료보다 더심하고 근거없는 칭찬일색)적인 견해들을 공적인 매체에서 보여줄때는 짜증이 아주 한없이 날때도 있습니다.차라리 종이신문에서 기획광고라고 상단에 살짝 써놓고 나열한 것은 애교로 봐줄정도로 심해지는 풍토의 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으로도 언론중재위원회같은 기능을 하면서 오보를 제어하고 공론화하는 커다란 커뮤니티나 공공포털등의 서비스를 해주는곳 없나 혹은 해볼까 상상하던 적도 있었지만... 능력부족으로..
바로 딜레마가 그런 것입니다. 적자폭이 증가하게 되면 국고지원이나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을 프로그램으로 인한 적자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죠.
2008/01/20 23:33아래 지적해주신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절감합니다. 은근슬쩍 기획 광고를 실어주면서 광고 효과를 들먹이는 언론사들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신뢰를 좀먹으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언론사들은 자기 살을 뜯어먹고 있다는 것에 무감각해져 버렸으니까요.
공감하다 못해 감정이입까지 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미디어 종사자로서 님의 글에 표현된 처럼, 곳곳에서 정말 많은 패러독스와 딜레마에 빠집니다. 대중의 이중적인 잣대. 님께서 언급하신 것 처럼 시청자의 반응을 높이고 시청률 올리는 작업은 대중이 생각하는 공공재로서의 프로그램 만들기 보다 쉽습니다. 여기서 딜레마인것은 공공재의 역할이 강조되다 보면 시청률 저하와 제작비 압박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이중적인 잣대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나름 이런저런 고민을 합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선택권이 커진 이 시대에 미디어 종사자는 어떤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임할 것인지를 놓고 말이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민의 단초에 도움이 됩니다.
2008/01/20 20:43꼭 미디어 뿐만은 아니겠죠. 일반 기업들도 마케팅이 부족해서 마케팅을 늘리면 원가 부담이 생기고 결국 원가 부담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나 직원 복지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그 반대로 마케팅 부족한 상황을 지속하면 소비자에게 어필할 기회를 놓치게 되죠.
2008/01/20 23:36뉴미디어시대 소비자들 역시 똑똑한 소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 같습니다. 사업자들은 소비자들의 변덕과 높아진 눈높이에 어떻게 적절히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클 거 같습니다.^^
미디어와 인터넷 산업전반에 사용자 Attention의 희소성에 대한 위기는 업계 종사자라면 하루가 다르게 체감하고 있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 현실은 차지하고라도, -그만님도 본문중에 은연중에 내비쳤다시피- 유독 우리의 '미디어'에만 근본적인 이율배반의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인식을 지배하는 가장 가까운 진리는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바로 '부조리'입니다. 제가 한 이야기는 아니고...^^ A. 카뮈가 그랬죠.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를 바로 부조리라고 규정했죠. 문제로 인식하셨던 부분에 대한 답은 저도 그만님도 카뮈도 못 드릴겁니다. 대신 원리를 아셨으니 고민이라도 해소하시길 바랄뿐입니다. 다행스러운것은 카뮈도 덧붙혔듯이 '부조리한 세계에 대래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회복한다'고 했으니... 현실에서도 그 '가치' 추구를 고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원래 우리는 부조리하고 부조리하며 부조리하게 살고 있다고 인정하면 조금 편해 지실 것 같습니다.
2008/01/25 18:35A. 카뮈의 말이 내포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요. 이미 정해진 결과가 있다거나 이미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도전하는 인간들. 인간들 스스로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또 다른 시각이겠죠. 좋은 말씀 감사하구요.
2008/01/25 22:50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지만 다행히 그렇게 아는 것이 늘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 전반을 지배하지는 않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