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열풍을 복잡계 이론으로 풀어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은 행위가 유튜브라는 IT 플랫폼을 타고 번져나간 것이다.요즘 B급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언론들은 너도나도 싸이의 콘텐츠에 주목하며 B급 문화 전성시대라는 말을 꺼낸다.
기존의 틀에 박힌 A급 문화를 B급 문화로 비아냥거리고 비꼼으로 인해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춤과 영상도 싸구려처럼 보이도록 의도되었다고 분석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결과를 놓고 보니 그렇더라’뿐이다. 차라리 다양한 분석이 있으면 좋겠는데 생뚱맞게 싸이의 월드스타 등극이 마치 B급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리고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만들어낸 현상을 단순히 콘텐츠의 힘이 전부인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어차피 누구나 이야기하는 주제이니 필자는 다른 기준으로 해석을 해볼까 한다. IT와 인터넷을 이해하기 좋은 도구인 복잡계 이론의 개념을 몇 개 가져와보겠다.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의도하지 않은 미시적인 행위나 현상이 모여 거시적인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창발’이라고 일컫는다. 마치 나비효과와 같은 이 같은 현상은 ‘의도되지 않음’이 핵심이다.
미네르바도 그랬고 싸이도 그랬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행동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의도된 것이지만 그 여파에 대해서는 의도나 계획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의도되지 않았지만 일단 시작된 행위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타고 걷잡을 수 없는 양태로 번져나갔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창발은 ‘적극적인 되먹임’에 의해 동조화된다는 점이다. 수많은 동영상 가운데 ‘왜 유독 싸이의 동영상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 것일까’를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와 광우병 사태를 떠올려보라
결론적으로 글로벌 IT 플랫폼이 드디어 지역적인 콘텐츠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유통과정에서 유튜브라는 걸출한 독과점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싸이 효과가 가능했던 것이다.
더구나 누구나에게 연결돼 있는 네트워크 안에서 ‘노드’, 또는 더 많은 연결고리를 가진 네트워크 덩어리들이 이 현상의 중간자 구실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소개해준 2700만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저스틴 비버라든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네트워크 덩어리들이 반응을 하니 나머지 연결고리가 파도를 타게 된 셈이다. 이런 유명인과 주목받는 기관인 언론사들이 누리꾼들과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적극적인 되먹임을 발현한 것이다.
복잡계의 이론 가운데 ‘자기 조직화’ 역시 싸이 현상을 설명하는 괜찮은 개념이다. 유튜브는 1분에 80시간 이상 분량의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콘텐츠 과잉 상태다. 무엇이 내가 원하는 동영상인지 찾기도 힘들 정도여서 가히 ‘혼돈 상태’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정한 질서를 찾게 되는데 ‘강남스타일’이란 독특하고 새로워 보이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재해석하고 이 재해석된 모습을 패러디하거나 플래시 몹 행사를 갖는 등 누리꾼들의 자기 조직화가 손쉬워진 것이다.
헷갈린다고? 미네르바 사태를 기억해보자. 그리고 광우병 사태를 기억해보자.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음에도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광장으로 모인 몇 년 전 우리의 모습을 기억해보자. 우리는 어느 순간 인터넷 곳곳에 마련된 광장(포털일 수도 있고 SNS일 수도 있고 게시판일 수도 있다)에 모여 ‘꺼리’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한 누리꾼이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서 칠 수 없다는 게시물에 ‘되는데요’라는 댓글 하나 남겼다가 누리꾼들의 축제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몰려들었고 높은 품질의 예고편이 동영상으로 유포되었으며 다양한 협찬물품이 제공되고 SNS는 물론 언론사들도 이 사건에 주목했다.
여기에 ‘강제’나 ‘의도됨’이 있었는가. 흔히 말하는 ‘음모’가 낄 자리라도 있는가.
인터넷은 이렇게 혼잡하면서도 질서를 찾아 자기 조직화가 작동하는 복잡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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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262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 작성 시기는 지난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