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4월 미국에서 제정된 잡스법이란 것이 있다. 흔히 스티브잡스를 떠올리겠지만, 잡스법은 'JOBS, 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라는 약칭이다.(물론 스티브잡스를 연상시키게끔 한 것도 사실이다) 즉, 창업 초기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한 법으로 일반인들이 신생 회사에 투자를 하거나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아이디어만 보고 선주문을 하는 형태의 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라는 사이트가 유명세를 타면서 크라우드 펀딩이란 시스템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요즘에는 '소셜 펀딩'이란 말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시사IN> 255호에서 임정욱씨가 소개한 바대로, 옛날 같으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질 수많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세상에 꽃피게 해준 것만으로도 킥스타터는 큰 의미가 있다.

이후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일반인들의 아이디어도 속출하고 크라우드 펀딩도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먼저 대출방식은 현재 제도상으로도 가능하다. P2P 금융(peer-to-peer finance)이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올리면 이를 보고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꿔주되 돈을 받은 사람은 꾼 돈을 얼마의 이자로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계획도 함께 올려야 한다.

보통 P2P 금융을 통해 돈을 대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로 일반 제 1, 2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고 사채의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채보다 이자가 싸고 일반 금융권 이자보다는 비싼 P2P 금융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최근 정치권에서 종종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펀드'라는 이름으로 선거비용을 조달한 바 있으며 지난 해 대통령 선거 때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모 모두 펀드를 이런 방식으로 조달하기도 했다. 모두 선거가 끝난 뒤 돈을 되갚았다.

최근에는 흥행성 여부가 불투명해 투자가 쉽지 않은 저예산 영화나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도 크라우드 펀딩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26년'의 영화화는 물론 거대기업을 겨냥한 사회문제를 담은 '또 하나의 가족', 최근에는 '연평해전'과 북한 지하교회 이야기를 담은 '사도'도 모두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조달했거나 조달하고 있다.

이들 영화의 제작비 모금의 경우 앞의 대출 방식과 달리 미리 후원금과 함께 영화표나 영화포스터, 제작진과 출연진의 영상 메시지 등을 리워드(보상)로 제시해 영화표를 선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이렇게 모금된 돈은 갚을 필요가 없다.

킥스타터 등의 해외 크라우드 펀딩 역시 이런 방식으로 제품을 아직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선주문 방식으로 홍보와 판매, 제작비 조달 등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는 지분 참여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잡스법과 우리나라에서도 제도상 추진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의 모습이다. 초기 창업 회사의 지분을 여러 명에게 나눠주고 현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돈을 갚을 의무는 없지만 추후 배당을 하거나 인수매각, 또는 주식 시장 등록 등 기업공개(IPO)가 이뤄지면 주주들이 이득을 얻는 방식이다. 구주 거래시 지분을 확보한 주주들이 회사의 경영권에 관여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1억원을 1000명이 10만원씩 나눠 투자하는 방식인 셈이다.

미국 잡스법의 경우 주식을 인터넷으로 공모하는 방식이지만 일반 증권거래와 관련된 여러 의무 조항과 규제를 해소해주었는데 최대 주주수를 500명에서 2,000명으로 늘린 것을 포함해 신생상장기업에 대한 회계규정 적용 유예기간 2년에서 5년으로 연장, 헤지펀드 또는 사모펀드 특정중소기업 투자펀드 모집광고 허용, 투자은행 상장 주선기업에 대한 리포트 발행 허용 등이 골자다. 이 같은 규정들은 연간 매출 10억 달러 이하 기업들에 적용될 예정인데, 이는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 거의 대부분이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창조형 중소기업 육성을 위하여 '크라우드 펀딩'과 관련한 제도 마련에 나선 가운데 일부 그 내용이 알려지고 있어 창업 시장이 크게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중소기업청과 크라우드 펀딩 업체들이 최근 회의를 갖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창업과 벤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무분별한 투자를 막기 위해 투자횟수와 관계 없이 1인당 투자 한도를 연간 1,000만~2,000만원으로 제한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운영하는 중개 서비스 사업자도 자본금 기준을 10억원 안팎으로 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크라우드 펀딩 운영사 관계자는 "최근 크라우드 펀딩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 제도 도입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크라우드 펀딩이 초기부터 지나치게 투자자 보호와 금융 거래에 대한 제도적 규제가 부각된다면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최근 정부의 금융 규제 관련 부처가 기업 진흥 부처보다 앞서서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 모습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미 중소 벤처기업 전용 유가증권시장으로 주목되었던 프리보드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다시 제 3시장으로 불리는 코넥스의 개설이 계속 늦어지는 것도 시장 활성화보다 규제와 제한규정에 매몰된 정부의 일처리 방식에 의한 우려의 배경이 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미룬다고 될 일도 아니고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신뢰의 기능이 작동하면서 기존의 금융과 자금의 흐름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인터넷과 기술은 제도적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으니 시장 활성화를 관망하면서 단계적 제도보완 마련이 올바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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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288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일부 편집된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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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0 14:24 2013/03/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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