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바뀌고 있다는 말은 이제 식상한 축에 속한다. 이미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이 체감할 정도면 어지간히 깊숙한 곳까지 미디어의 변화는 진행됐다고 무방하다.
기업이 변하고 광고업계가 변하고 홍보업계가 변하고 나서야 매체 종사자들이 바뀌고 있으니 위기 의식은 그 반대로 진행될 것이다.
변화의 큰 흐름은 <미디어 2.0 : 미디어플랫폼의 진화>에서 많은 부분 언급한 바 있다. 이 책을 쓸 때 몇 가지 염두에 두었던 아이템 가운데 넣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직업적인 비전이었다. 미디어 업종의 전문화와 다중역할의 진행 방향은 언뜻 산발적이어서 흐름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디어 플랫폼이 진화되면 그에 맞는 스킬을 연마하고 각 부문마다의 재능을 발휘하는 역할(role)이 등장하거나 기존의 역할이 변화되거나 강화된다.
이는 기존의 소설가들이 잡지 기자를 병행하다가 잡지 기자의 고유한 역할이 생겨나고 다시 일간지 기자가 편집과 취재, 사진 기자로 분화되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TV 방송에서 뉴스를 읽어주며 진행 역할을 이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으로 분화되고 기자. 작가, 카메라, 조명 등으로 분화되는 모습도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던 직종이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언론인의 한 부류로 편입되는 과정도 목격할 수 있다. 흔히 PD라고 부르는 프로듀서, 또는 프로그램 디렉터 등의 방송 직업은 보통 프로그램의 연출과 기획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요즘에는 이들 역시 취재 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아젠다세팅에 동참하면서 어엿한 '언론인'으로 대접받고 있다. 심지어 예능 PD까지.
역할이 뭉쳐지는 사례도 발견된다. 1인, 또는 소수가 촬영과 취재를 동시에 한다는 뜻의 비디오자키, VJ 등이 그런 직업이다. 직업적인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독자적인 취재를 행한다는 의미에서 젊은 층에게 주목 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직업들은 언제까지 유효하고 어떤 새로운 직종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들어 인터넷 기자, 또는 웹 기자들이 늘고 있고 블로거가 새로운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말만 붙이면' 모두 언론인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언론인은 자격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여기에서 약간의 제약사항을 말하자면, '언론사 종사자, 또는 관련자로 사회적인 이슈와 정보의 생산, 유통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직업'을 언론인으로 제한하고 새로운 직종을 설명하기로 한다.
1. 콘텐츠 코디네이터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더 깊이 있는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예전 처럼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전통적 범주가 아니다. 트렌드 키워드와 전문 분야, 관심사에 따라 각 분야의 콘텐츠는 상호 연결성을 갖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거칠게 생산된 콘텐츠를 쉽게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중간의 조정자이자 요리사 역할이다. 이는 기존 언론사 조직에서 편집자 역할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 언론사, 또는 다수와 복수의 콘텐츠 생산처에서 수집된 내용으로 기반으로 새로운 차원의 매시업 컨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콘텐츠 코디네이터는 일견 포털의 뉴스 서비스 에디터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좀더 콘텐츠 내용을 손질하고 형식을 정리하여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전달해줘야 한다. 모바일과 TV 등 이종 플랫폼으로 전달되는 콘텐츠의 경우에도 각자의 버전에 맞도록 정리하고 패키징과 코디네이션 하는 역할 역시 콘텐츠 코디네이터의 역할이다.
2. 융합 미디어 플래너(전략가)
미디어들이 융합되고 있는 상황에 종합적인 전략을 통해 이종 미디어 종사자 사이의 통합과 융합을 주도해가는 전략가를 말한다.
정보통신에 유능해야 하며 미디어 정서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조직 내 인원들의 적절한 배치는 물론 조직 외부의 미디어 인력과 미디어 콘텐츠, 미디어 플랫폼의 수급 및 파트너십 관계 구축에도 유능해야 한다.
전체적인 미디어 시장의 조율자로 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업계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며 전체적인 미디어 전략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융합미디어 트렌드가 견인될 수 있어야 하므로 상징적인 존재일 가능성이 많다.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역할자로서는 조직이나 집단, 또는 네트워크의 형태로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 언론사 안에는 이런 아키텍트 수준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CIO나 CSO로 영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는 이런 사람들은 독자적인 컨설팅 그룹이 될 수도 있다.
3. 미디어 에이전트
대행사(인)의 의미로 에이전트는 많은 역할을 수행해준다. 콘텐츠 생산자에게는 콘텐츠 생산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고 나머지 부분의 역량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콘텐츠 판로를 확보해주며 사회적 기여 및 활동을 위한 주선자 역할도 한다. 수익을 배분하며 1 대 N 또는 N 대 1의 유동적인 시장 상황에서 생산자 단의 미디어 주체(회사든 개인이든)에게 충분한 네트워크 능력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콘텐츠의 개발을 독려하고 기획에도 함께 참여하며 필요할 때는 독점권한을 갖고 유통 및 소비자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할 줄도 알아야 한다.
클라이언트(개인든 단체든)의 역량을 평가하고 그 역량 평가에 맞는 역할과 시장성을 부여해주고 전략적으로 콘텐츠 생산자인 클라이언트의 역량을 강화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멘토링'을 수행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부 블로거를 주부 블로거가 아닌 프로 와이프로거로 변신시켜주는 역할이 이들의 일이다. 가장 연예 매니지먼트나 스포츠 에이전트와 가까운 직종이 될 것이다.
4. 미디어 플랫폼 디자이너
미디어 플랫폼이 기술적인 완성도를 논하기 전에 이미 다방면으로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방송, 전파 기술은 물론 유무선 인터넷 기술, 인터페이스 및 기타 맵, GPS 등 부가 정보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발전들을 꿰뚫고 기술을 새로운 차원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구성해 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또는 조직)이 미디어 플랫폼 디자이너다.
블로그와 유튜브 다이렉트, 트위터, 야후 버즈, 네이트 커넥트 등 다양한 플랫폼을 매시업시켜 새로운 차원의 소셜 미디어를 탄생시키고 이를 분화시키고 융합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광고 및 유료화 플랫폼을 구상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수익에 대한 중요한 키는 콘텐츠의 확산성과 수용자 맞춤형 콘텐츠 흐름을 구상해서 실현시키는 일이다.
단순한 엔지니어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과 소셜 파급력을 감안한 플랫폼을 구상하고 구현해야 하며 이 플랫폼을 통한 미디어 역할 수행을 교육시키는 것 역시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5. 미디어 이벤트, 부가판권 프로듀서
미디어가 있는 곳에 이제는 이벤트가 있다. 거의 모든 미디어들이 오프라인 및 온라인 이벤트를 개최하고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쓴다. 여기서 이벤트는 콘텐츠 소스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형태의 부가 콘텐츠 시장을 말한다. 스타 마케팅이나 CF, 기업 스폰서, 강연, 오프라인 행사, 출판, 시나리오 부가 판권 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기존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이벤트들이 녹아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수익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콘텐츠 산업의 수익률이 0으로 수렴해 가는 상황에서 이벤트와 부가 콘텐츠 사업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의 문제이기도 하다.
음반수익만으로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과 오프라인 행사 등에 불려나가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며 음반보다는 음원 수입에 치중하는 음반사의 속내도 이와 같다.
원천 콘텐츠 소스를 골라내는 안목과 다양한 멀티 콘텐츠로 분화시켜 수익성을 접목시킬 수 있는 전략가여야 한다. 또한 각종 부가 콘텐츠와 이벤트를 기획하고 사업화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콘텐츠는 미래 미디어에 대한 단상 가운데 하나로 2009/10/01 요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키워드 [조직 2.0] 에 이은 두 번째 구상입니다. 세 번째는 오픈뉴스 운동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겠습니다. 마감은 정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