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닉 미디어(Organic Media, http://organicmedialab.com)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웹 2.0의 개념을 공부하면서 미디어 2.0이란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을 때, 이후 추천사 한 줄 써달라며 보내온 큐레이션 책을 받아들고 서문을 쓰고 싶다고 출판사에 제안했을 때의 흥분이 있었다.
이런 단어들이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IT와 미디어를 해설하는 데 쓰고 있는 여러 개념들을 함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기술계와 언론계의 괴리감을 몸소 체험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더 알뜰살뜰 잘 챙겨서 설명하고 실험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매스미디어의 시대는 끝났다.
첫째, 매스미디어는 신문, TV, 라디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사회관계를 만드는 미디어를 말한다. 매스미디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인터넷이 TV를 대체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중이라는 사회관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불특정 다수라는 그룹은 변화무쌍한 네트워크로 대체될 것이다.
둘째, 소셜 미디어와 사물인터넷 등의 현상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 아니다. 미디어의 본래 개념을 일깨워주는 현상일 뿐이다. 즉 미디어가 단순한 메시지 전달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를 매개하는 노드이며, 심지어 이 노드 자체도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주는 사회, 기술적 현상이다.(오가닉 미디어, 11~12p)
여기까지 읽고 전문가들의 역할이 줄어든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넘쳐나는 콘텐츠가 사람들을 계속 연결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소중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한 콘텐츠를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콘텐츠 생산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은 아마추어들이 근접할 수 없는 자원과 노하우를 이용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같은 책, 66p)
이 책이 갖고 있는 미덕은 '빨리 읽히지만 빨리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컨텍스트, 즉 문맥은 유려하여 읽기 쉽지만 이 속에 쓰인 개념은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T 전반의 최신 단어와 용어들이 나열돼 있고 아마존과 허핑턴포스트, 페이스북 사례들이 등장하며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최근의 IT 트렌드를 대표하는 이야기들이 맛깔스럽게 분류되고 정리돼 있다.
더불어 이 책 안에는 미디어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 들어가 있다. 이는 매스미디어와 언론이 '미디어'를 대변하는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장하듯 미디어는 원래 의미 자체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 방법, 도구'라는 내 인식과 일치한다.
가치 중립적으로 보자면 이제 미디어는 그 네트워크 안에서의 역할과 다른 노드와의 결속력, 구성 방식이 바뀌니 권력 구조도 바뀌고 영향력도 바뀌는 것 뿐이다.
이 책에서 조금씩 언급되고는 있지만 최근 들어 내가 상담하고 있는 많은 인터넷, 모바일 스타트업들의 본질적인 업이 '미디어'임을 눈치채고 있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
미디어 비즈니스란 내가 만든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도와 시간을 광고주에게 파는 행위로 돈을 버는 것이다. 현재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블로거들에게도 필독서다. 기본적으로 이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미디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느껴보길 권한다.
그만의 생각과 미래 비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그만의 생각과 유사하다. 이 책이 빨리 나와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난 미디어 2.0과 큐레이션 이후 또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서 밤샘을 각오하고 책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