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5일(현지 시간) 구글은 미국 마운틴 뷰의 컴퓨터 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아라 개발자 회의'를 열었다. 최근 모토롤라를 매입해서 레노버로 재매각한 구글이 모토롤라 아라(Ara) 프로젝트만은 팔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아라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아라 프로젝트는 스마트폰을 마치 레고 블록 조립하듯이 디스플레이 부품, 카메라 부품, 배터리 부품, 메모리 부품, 센서 부품 등을 규격에 맞게 조립해 하나의 DIY(Do It Yourself)
구글은 2012년 1만7000개의 특허를 보유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125억달러에 사들였고, 이를 중국의 레노보에 매각했으나 다시 넘어간 특허는 2000개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핵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특허는 남겨두고 팔았으니 구글이 30억 달러에 모토롤라를 레노버에 넘긴 것이 밑지고 판 것은 아니라는 소리가 나올만 하다.
구글의 아라 계획 책임자인 폴 에레멘코는 내년 1월 내놓을 첫 제품을 '그레이(회색) 폰'으로 이름짓고 기본적인 모듈만 갖춘 제품의 가격은 약 50달러(5만2000원)이라고 말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었다.
각종 약정을 통해 사는 스마트폰 가격이 '0원'이 흔한 마당에 뭘 그리 놀라나 싶겠지만 이 가격은 '공기계' 가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약정이나 각종 서비스를 기본 가입해서 불필요한 통신료를 지불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통신 상품에 가입하지 않고도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제공되는 메신저 등을 통해 통화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구글의 아라 프로젝트가 20여 년 전의 IBM의 호환 PC 전략과 많이 닮았다는 것이고 정면으로 폐쇄형 플랫폼을 고수하고 있는 애플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IBM은 PC 기본 하드웨어를 만들어놓고 이에 사용된 기술적 기반들을 PC 레퍼런스 가이드라는 책 형태로 주변 기기 사업자들과 컴퓨터 마니아들에게 배포하면서 ‘오픈 아키텍처’의 시대를 만들었다. 당시의 최신 기술을 통째로 공개하고 나니 너도나도 호환 PC를 만들기 시작했다.
IBM의 이러한 호환 PC 전략은 다른 PC 제조사들을 급성장시켰고 애플의 폐쇄형 PC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IBM 호환 PC 시장 안에서는 HP나 델 등에 밀려나 원조인 IBM은 결국 PC 제조사업 부문을 레노버에 매각하는 굴욕의 역사를 맞이했다. 구글이 이런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과의 공고한 대결 구도에서 완전한 판을 엎는 전략은 결국 혁신과 개방이란 키워드에 있다는 점을 구글은 잘 알고 있다.
구글은 야후를 넘어설 때도 자신들의 검색 능력과 지도 데이터 등 자산을 수많은 유사 서비스들에게 나눠주었고 그만큼의 종속성을 유지하면서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가 될 수 있었다.
아라 프로젝트는 개발자는 물론 다양한 특화 제조업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이란 분명한 신호를 주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액세서리 시장 규모만 해도 2조 원으로 추정된다. 액세서리가 단순히 스마트폰 케이스에서 진정한 특화 기능성을 가진 DIY 부품으로 바뀔 수 있다면 더 많은 시장 참여자가 생겨날 것이고 이를 통해 구글은 더 많은 파트너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라 프로젝트에 대해 삐딱하게 보려면 부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들이 많긴 하다. 이미 조립 PC 시장과 달리 조립 노트북에 대한 개념이 일부 시도됐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얇은 두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표준적인 방법보다 각 제조사마다의 다양한 노하우가 집약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용 부품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오히려 표준화된 조립품이 더 비싸고 둔탁한 외관으로 외면을 받은 것이다.
무엇보다 애플이든 구글이든 스마트폰 세상을 누군가 혼자 독식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라의 혁신이 삼성과 중국 제조사들에게 어떤 자극을 줄지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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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