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자. 인공지능을 통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중요한 키워드를 조합해서 자동으로 작성되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반해서 큰 투자건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이 작성한 기사가 오보였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직업 기자는 이 사건을 보고 어떻게 판단할까.

어느 꽃가게 주인은 꽃배달 사업을 위해 드론을 샀다. 작은 화분을 실은 드론을 조종해 원격지에 배달가는 과정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실수로 드론을 툭 건드렸다. 드론은 화분을 놓쳤고 그 화분은 고가의 자동차 위로 떨어졌다. 꽃가게 주인과 드론을 건드린 자전거를 탄 사람, 그리고 자동차 주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리고 직접 꽃을 배달하는 배달원들은 이 사건을 두고 뭐라고 이야기할까.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직장을 만들어내지만 반대로 기존 체계와 기존 시장, 기존 직업을 위태롭게 만든다. 더불어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진다.

이런 현상을 두고 ‘와해성 혁신(Distruptive technologies)’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체계를 파괴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기존의 체계를 흐트려놓고 기술이 대체할 수 있는 부분으로 재조합해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전세계의 미디어 산업 지형도를 변화시켰고 이 변화는 인터넷이란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체계가 기존의 콘텐츠 생산 체계 자체를 재조합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제도와 법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식자공’ 등 많은 직업군이 사라졌다. 자동차가 나오면서 마부들이 일자리를 잃었듯이.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매킨지 산하의 연구조사기관인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가 작년 5월 발간한 ‘와해성 기술: 일상, 비즈니스, 글로벌 경제를 변화시킬 기술 발전’이란 보고서에서는 향후 10~20년간 12가지의 차세대 와해성 기술이 세계 경제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 발전의 속도, 파급력의 범위와 강도, 혁신성을 기준으로 선정된 12개의 차세대 와해성 기술은 ▲모바일 인터넷 ▲지식노동의 자동화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첨단 로봇 기술 ▲무인 자동차 및 수송 장치 ▲차세대 유전학 ▲에너지 저장장치 ▲3D 프린팅 ▲첨단 재료 ▲첨단 석유/가스 탐사 및 채굴 기술 ▲재생 에너지 기술이다.

이런 와해성 기술은 가격 대비 성능의 측면에서 유사한 기술 및 접근 방식에 비해 급격한 속도로 발전하거나 불연속적인 성능 향상에 기반해 발전의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고 세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또한 이 기술들은 ▲투자 규모와 GDP 등 경제적 수치를 현저히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기존 경제 구조의 가치사슬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한 그리스 출신 토지 측량사는 1년 전 구매한 드론(무인항공기)을 이용하면서부터 직원들 대다수를 내보냈다. 예전에는 현장 실사에 12명으로 구성된 팀원과 함께 나갔지만 이제는 드론 한 대와 조수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측량사는 드론 덕분에 지도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수익성이 몇 배 뛰었다”고 말했다.

리씽크 로보틱스 백스터(Baxter)라는 산업용 로봇은 이미 유명해졌다. 이 로봇은 기존의 단순 반복 작업용 로봇에 비해 75~85%의 가격대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수행하는 복잡한 작업 순서를 몇 번만 반복해서 학습시키면 스스로 오류를 교정해가면서 인간이 가르쳐준 작업을 정교하게 수행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백스터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휴가를 요청하거나 급여를 올려달라고 하지도 않고 파업도 없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자동화 기기가 새로운 기술들이 적용되고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지식 노동자의 자리와 단순 노무직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제도는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옹호하게 될까. 이제 우리는 와해성 기술이 만들어낼 세계를 상상하고 뭔가 유연하게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생겨날 것을 기정사실로 두고 제도를 연구하고 있고 미국은 물론 독일과 일본 등은 자동차 회사들이 2040년 정도에 상용화할 자동주행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릴 때 벌어질 사건을 예상하고 법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도로교통법이 무인차 운행을 허용하지 않고 차량 간 통신을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주파수를 정부가 엉뚱한 곳에 할당해서 자동운행 자동차는 구경할 수 없다. 우리나라 측량법은 지도의 국외 반출이 불가능해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정보 서비스 구글 나우와 내비게이션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제도가 와해성 혁신을 가로 막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존 직업군은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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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6 09:52 2014/04/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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