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새로운 것이면 다 좋은 것일까? 어떤 것이든 새로운 조류라면 당연히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으면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식으로 대답을 하든가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사무실을 특정짓지 않고 어느 장소든 업무를 볼 수 있는 환경, 즉 스마트워크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필자도 올 초 <시사IN 226호>에서 스마트워크가 시대의 조류라는 점과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필자는 스마트워크가 아니면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외근이 많고 스마트 기기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스마트워크 환경이 필자에게 ‘필요한 것’임은 분명한데 이상하게 스마트워크로 인해 개인의 삶이 풍요로와졌는지는 바로 답하기 어렵다.

필자에게 연락하는 이의 대부분은 거의 24시간 안에 답을 받을 수 있다. 아주 고민해야 하는 경우나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작업이 아니라면 거의 즉시 대답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고 구글 토크와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트위터 메시지가 수시로 울려 댄다. 통화와 SMS는 기본이다. 업무를 집중할 때는 모든 알람을 꺼놓긴 하지만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진 것은 확실하다. 틈만 나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태블릿을 꺼내보기 때문이다.

스마트워크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고 커뮤니케이션 능률을 확대시키는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나의 산만해진 정신상태는 어쩌란 말인가.

낯설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스마트워크 조류에 따라 BYOD라는 신조어도 요즘 종종 들린다. Bring Your Own Device 라는 말로 우리 말로 굳이 풀이하자면 ‘개인용 디바이스로 업무보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일터에서 자신의 소유 기기를 사용해 업무를 본다는 말인데 이 말은 아무래도 서양인들이 파티를 할 때 자신이 먹을 음료수는 각자 지참하라는 뜻의 Bring Your Own Bottle(또는 Beer) 이라는 말의 변형일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로게이머들이 PC나 모니터는 들고 다니지 않아도 자신의 손에 맞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의 소유 악기를 들고 연주 연습하러 나오는 것 역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PC는 2, 3년 주기로 감가상각되는 회사의 자산이다. 이 때문에 회사는 무겁고 튼튼하고 싼 기기를 사서 고참이 쓰던 PC를 후임에게 전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회사가 제공하는 네트워크와 PC 기기는 사무실이란 공간 안에 업무 영역을 규정지어 놓았고 지식노동자들의 특징적인 근무 환경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PC는 노트북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고 이 노트북은 업무 공간을 벗어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네트워크의 보편성은 업무 공간을 벗어나서도 네트워크를 통해 통신하고 업무 처리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으며 회사의 자산이 회사 밖에서도 업무 도구로 사용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블랙베리를 시작으로 이메일을 지극히 개인적인 기기인 휴대폰 안에서 확인하고 답변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개인 기기를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고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넷북과 울트라 노트북 등 이동성이 강조한 첨단 기기를 개인용으로 구매했지만 업무용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전히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를 짓고 싶어 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자나 IT 부서 직원들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기업의 보안이 철저히 무시 당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IDC에 따르면 직원들이 개인 소유의 디바이스로 기업 정보에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IT 의사결정자는 40%에 불과하다. 반면, 자신의 기기로 기업 데이터에 접근하고 있는 직원은 이미 70%에 이른다. 기업에서 기업용 태블릿 기기를 구매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시스코 등의 기업용 장비 업체들은 BYOD 조류로 인해 기업용 태블릿 사업에서 1년만에 철수했다. 반면 IT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BYOD 조류에 따른 기업의 불안감을 노린 제품을 속속 시장에 내놓고 있다.

장소에 대한 제약이 없었던 반면 일과 가정 생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던 홈오피스와 달리 스마트워크는 회의를 하거나 협업을 해야 할 때 특정 센터를 지정해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스마트워크 개념은 지극히 공급자 관점의 근무 형태일지 모른다. 어쩌면 스마트워크의 확산 속도보다 자신의 기기로 회사의 업무를 보는 직원들이 더 많아지면서 기업이 은근히 원하던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사라지는 진정한 ‘언제 어느 때든 일을 하라’는 스마트워크 환경이 더 빠르게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기업은 회사에서 얼마나 쓰일지도 모를 고정용 싸구려 기기를 사두어야 할지, 아니면 직원의 개인용 고가 기기 구매를 보조할지 고민해야 한다. 반면 직원으로서는 제아무리 개인용 기기라도 고장이나 보안사고 등의 문제가 생기면 업무 공백과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필자가 IT 트렌드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업무와 사생활이 극단적으로 뒤섞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식노동자의 휴식을 위해 주말에는 법으로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수신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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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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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1 09:17 2012/12/0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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