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조금은 과격해보여도 말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실명제가 어떤 폐해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수년 동안 수많은 글에서 걱정과 우려를 통해 전달한 바 있다. 다시 언급하기도 싫을 정도로 인간의 본성까지 들먹이며 인터넷 실명제가 산업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사회 건전성으로든 그다지 유익하지 못함을 역설해 왔다.

하지만 그건 엘리트주의와 계몽철학에 경도돼 '우민'들의 '아무나 지껄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자고 한 농담을 죽자살자 달려드는' 지금의 정책 당국자들의 귀에는 허무맹랑한 '도발'쯤으로 받아들여졌나보다.

그렇지만 이제 좀 귀를 기울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실익은 없고 정책 실패로 인한 피해만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가 8일 보도한 "실명제 효과 제한적, 소통위축 뚜렷" 기사에서도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가 최근 행정대학원이 발간하는 '행정논총'에 실은 논문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실명제 이전에는 게시글의 13.9%가 비방글이었으나 이후에는 12.2%가 비방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시글에서는 실명제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셈"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튜브가 실명제를 비켜가면서 오히려 국내 동영상 서비스 1위를 차지하게 되고 성실하게 정부의 정책에 따라준 판도라TV는 이용자의 활성도가 급감하고 있는 사실 역시 이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방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판도라 TV는 방송통신위원회에 국내 업체에 역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공개 질의서를 보내 항의하기로 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주최한 간담회에서도 역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효성, 보편성, 적절성에서 낙제 정책, 본인확인제
실명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해소하여 좀더 투명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고 역기능을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발상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취지가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도가 갖추어야 할 '실효성', '보편성', '적절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이 문제를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먼저, 앞에서 제기했던 것 처럼 모든 사람들이 '실명제'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지만 '범죄자'의 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피해가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되고 실제로 차명이든 가명이든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신을 숨기는 기술을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실명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태도로 커뮤니케이션하게끔 유도하고 장려한다는 의미가 되어야지 이것을 강제한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익명으로 자기표현을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성 측면의 문제는 산업적인 측면은 물론 국내외국민의 차별적 대우에 대한 근거로 실명제가 엉뚱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보편 타당한 서비스여야 하는 정책이 오히려 자국 법인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해외 법인들은 마음대로 활개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고 트위터와 유튜브 사용자들에게 적절한 통제를 가할 수도 없고 서버를 통제하거나 압수수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아예 현실성 자체가 없는 법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내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야후코리아는 물론 국내 태생 기업들은 이런 불합리한 조건을 모두 맞춰야만 하는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적절성 부분 역시 제기할 문제다. 과연 실명제를 적용하는 기준이 개인의 식별번호, 그것도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한 일련 번호인 주민등록 번호를 기준으로 민간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의 본인확인을 하게 만들어야 했는가에 대한 문제다. 국가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어야 할 '일련번호'를 민간업체에게 딱히 기능도 별로 없는 본인인증을 위해 관리하고 통제하라고 강제 위임하는 형태라는 점이다. 이는 길거리를 다니는 국민들에게 이름표 붙이는 것은 길거리 상인들이 할 몫이라고 떠넘기는 것과 같다.

이 외에도 보안성 부분도 문제다. 보안의 측면에서 발신자와 저장되는 데이터, 그리고 개인과 집단은 서로를 모르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보안이다. 상호를 연계할 수 있는 데이터를 남겨두고 이를 관리하고 회원들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보안 침해 사고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실명제의 실익도 없는 중소 서비스사업자에게 실명제 강권하는 나라
얼마 전, 태터앤미디어는 지방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댓글 실명제 강제 실시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태터앤미디어는 현재 5개의 등록 인터넷 매체를 운영중이며 이 언론 매체 가운데 3개 매체가 월간 10만 방문자가 넘어서고 있다는 이유였다. 선거기간 동안 댓글 실명제를 강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했다. 완곡하게 말하면 '사양'했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본인확인 시스템을 민간 매체 사업자가 구태여 적용할 필요도 없고 선거기간 동안 선거관련 댓글이 달릴 가능성이 높은 매체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댓글을 익명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독자들과의 소통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길을 택했다. 선거기간 동안 댓글을 닫아놓겠다는 결정이었다. 유튜브 처럼 실명제 때문에 사업을 철수할 수도 없고 이 때문에 정책 당국과 논쟁하면서 규제 해소를 호소하고 말고 할 시간이나 여력이 없어서 우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우리 매체들의 필진들은 대부분 트위터 등 기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서 의견을 주고 받는 것에는 큰 장애를 느끼지 않으리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해외 유수의 수준 높은 서비스들이 한국의 IT 인프라와 소비자들의 역동성을 보고 투자를 하러 온다고 해도 기가 막혀 다시 되돌아갈 판이다. 인증서버 따로 둬야 하고 불안하게 사용자 개인 정보를 관리해야 하고 해외에서는 통하지도 않는 갖가지 필수 장비를 구비해야 하니 구태여 그렇게 공들여 가면서 소비자들을 부자연스럽게 만들 가치나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다.

수년 전 잠깐 한국 지사로 들어왔다가 철수한 마이스페이스 이후로 우리나라에 투자하러 온 외국계 기업이 전무하다는 것도 곰곰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가 싶다. 이런 한국의 이상한 규제로 해외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외면하고 되돌아 갔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흔하게 듣는 이야기이다.

시대 착오적이고 효용성은 물론 명분도, 실익도 없는 실명제는 지금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추후 주민등록번호를 민간 사업자들이 취득하여 관리하고 보관 저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훨씬 안전한 정책이다. 지금 국민들 입 막느라 실시한 법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1원에 팔려다닌다는 소식에 자존심 상하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 실명제와 관련된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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