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과 엮인 글을 먼저 소개합니다.

2008/01/19 미디어 패러독스, 미디어 딜레마

이 글에서 그만은 미디어 산업의 고유한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최근 민영 미디어렙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는데 이게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와는 별개로 방송가에서는 지난 십 수년 동안 뜨거운 감자로 이어져 내려왔던 이슈였습니다.

이 민영 미디어렙 문제가 미디어 딜레마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죠.

일단 미디어 '랩'이 아니라 '렙'입니다. 이 용어는 좀 전문적이 용어로 느껴지실지 모르겠지만 이 용어 자체는 Media Representative라는 용어의 축약으로 광고를 대행해주는 기업을 말합니다.

지금 공중파 방송은 아시다시피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전파를 독점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국가이며 국가는 자격 요건을 갖춘 곳에 이 전파를 나눠줍니다. 최근 미국에서 구글이 이 전파 가운데 특정 영역을 '입찰'해 사용권을 따내는 것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전파를 국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중파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점유하는 전파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전파는 통신용으로 전용되어 사용되어가면서 PCS와 같은 사업이 등장할 수 있었죠. 이 가운데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이용해 방송을 할 수 있는 대신 무료로 전송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며 이는 방송의 공공성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방송을 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재원이 바로 광고였죠. 이 공중파 방송 광고를 그동안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독점해왔던 것입니다.

방송광고 독점의 기능.
그동안 코바코가 방송광고를 독점하면서 광고주와 방송사는 중간에 방송광고를 대행하는 코바코를 중간에 두고 방송광고를 집행할 수 있게 되면서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즉, 방송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죠. 또한 같은 방송이더라도 청취자나 시청자들이 적은 비인기 방송 프로그램이나 방송사에게도 적정하게 광고를 배분해 주는 광고 배정(미디어 믹스라고 흔히 말합니다) 제도를 통해 공익적 방송이나 시사, 다큐 프로그램들이 광고유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CBS와 같은 종교방송 등은 광고주 유치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방 민영방송 역시 상대적으로 방송 지역 범위가 적고 시청자와 청취자 수가 적지만 일정 부분 균형 있는 방송 광고를 배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광고 독점의 기능.
여기까지는 긍정적이었는데요. 고이면 썩는다고 할까요? 최근들어 광고비 책정과 광고 배정에 대한 불만이 광고주로부터 많아지고 있습니다. 즉 돈을 내고 광고를 하는데 다매체 시대에 도달률도 떨어지고 시청률도 떨어지는 곳에 광고를 억지로 끼워넣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태도에 광고주가 그동안 참고 있다가 이를 시정해줄 것을 요구해왔었던 것이죠. 역으로 MBC와 같은 회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숙원이던 중간광고(즉 60분짜리 프로그램 중간에 25분이나 30분 사이에 넣는 광고)를 시행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해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습니다. 더구나 직접 광고를 유치하면 좀더 효율적이고 저비용으로 광고를 집행할 수 있는데 과도한 대행비를 떼어 가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광고 독점이 내심 못마땅했던 것이죠.

더구나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거대해지고 방송광고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광고대행사(보통 제일기획, 오리콤과 같은 광고 기획제작 대행사)들에게는 '슈퍼갑'으로 기능했던 것입니다. 마치 지금 인터넷의 네이버보다 더 강력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니 안팎으로 잡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슈퍼갑의 위용을. ^^

없애도 문제고 있어도 문제인 방송광고 독점제도
이와 같은 이유들로 해서 흔히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 또는 권력과 시장의 관계로만 해석하기에는 꽤 많은 요인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상 보완을 해야 한다는 측에서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방송광고공사를 놔두고 방송사들이 직접 영업을 하거나 민영 방송광고 대행업자(즉 민영 미디어렙사)가 등장하게 되면 과열 경쟁이 벌어질 것이 눈에 보입니다. 또한 그동안 비인기 영역이지만 꼭 필요한 시사, 종교, 공공, 다큐 등의 공익성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큰 폭의 구조조정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기업들로서는 한국방송광고공사만을 바라보기보다 좀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비용효율성이 높은 광고 효과를 찾아 비용을 집행할 수 있을테니 당연히 광고비를 절감할 수 있겠죠. 또한 광고 제작 대행사 역시 불합리한 구조로 진행되던 입장에서 최소한 동등한 입장에서 돈을 내는 곳이 '갑'이 될 수 있어 지위 역전 현상을 반기게 될 것입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대행수수료 인하나 경쟁 구도 속의 다양한 광고를 유치하고 이를 수익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좀더 발굴하면 수익성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민영 미디어렙에 대한 신문과 방송의 태도들입니다. 어찌 보면 민영 미디어렙은 신문 진영으로서는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방송광고로 광고주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상대적으로 영업 환경이 열악해질 것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지금 제도를 고수하고 놔두자니 민영 미디어렙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측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이 되어 혼란스러운 것이죠.

또한 방송 역시 민영 미디어렙을 당장 반기기도 어려운 것이 종교방송과 공익방송, 지역 민방들 처럼 '동료'들이 희생되면서까지 중앙의 방송들이 수익을 독점해야 할 급박한 상황도 아닌데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시청률과 광고 비용효율성 등으로 매겨지면 결국 상업화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수익성은 올라갈 수 있지만 광고주의 입김은 더욱 세질 것이니 이거야 말로 '영혼을 팔 것이냐 말 것이냐'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요.

개인적으로 민영 미디어렙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부정적 요소들을 얼마나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최근 들어 일상 미디어로 편입되고 있는 각종 뉴미디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없이 급작스럽게 진행된다면 방송 역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확대될 것 같네요.

이 글은 요즘 나오는 민영 미디어렙이란 말이 그다지 익숙한 말이 아니어서 일반인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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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8/10/11 23:02 2008/10/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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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디어 패러독스, 미디어 딜레마

    Tracked from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삭제

    미디어 영역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영원히 풀지못하는 숙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패러독스(Paradox), 역설이라고 말하지만 가장 근사한 번역은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어감상 가장 가까운 말인 듯 싶다. 그리고 딜레마(dilemma) 역시 딱히 직역은 어려우나 '진퇴양난(進退兩難)'이 가장 어울린다. 자, 미디어 영역과 우리 생활 속의 패러독스와 딜레마부터 들어가자. 1. 사람들에게는 선택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2..

    2008/10/11 23:12
  2. 코바코 독점 해소와 미디어업계 파장

    Tracked from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삭제

    KOBACO 코바코(KOBACO), 즉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공중파 방송광고를 독점하는 것은 시장질서 및 경쟁촉진에 위배되므로 위헌 취지의 판결이 헌재로부터 나왔다. “코바코 방송광고 독점 헌법 불일치”[국민일보] 위헌이 아니라 헌법 불일치 결정이 나온 이유는 위헌이 되어 법안이 즉시 효력이 정지되면 방송광고와 관련된 모든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에 사실상 위헌이지만 새로운 법안으로 교체될 때까지의 공백기간을 두겠다는 말이다. 30년 가까이 지켜져온 방송광..

    2008/11/2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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