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지만 사안에 따라 강력할 수 있습니다."
"내 주변의 10명에게 준 영향은 또 다른 각각의 10명의 영향력으로 전파될 수 있죠"
"이른 바 나비효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가능성과 가치를 이야기할 때마다 일부 블로거들은 이 말을 듣고 삐딱하다.
"고작 10명에게 주는 영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국 거기서 멈춰버리면 끝이 아닌가"
"100만명이 촛불집회에 나갔어도 현실적인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한 것 아닌가"
"차라리 언론사들을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블로그 연대가 필요하지 않은가"
여기서 미디어 영향력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 미디어들에게 영향력을 안겨준 인터넷이란 시스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미디어 즉,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블로그는 미약하기 그지 없다. 고작 하루에 10명 들어와서 무엇을 어쩌겠는가. 세상은 커녕 내 주변도 내가 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나는 혼자 벽보고 소리치는 허무한 일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어디서 그런 욕심이 나왔는지 묻고 싶다. 때론 대박 트래픽이나 과도하게 쏟아지는 관심을 받아본 블로거라면 트래픽이 낮아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적어지고 댓글도 달리지 않으면 초조해 한다. 그러다 점차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하고 오히려 기존의 정체성에 과도한 색깔을 입혀 좀더 강력한 메시지 발굴에 힘을 쏟게 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이상하게 그렇게 과도한 열정을 쏟아부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고 '바보 같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블로거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물론 매스미디어 종사자들 역시 알면서도 문득문득 잊고 사는 것이 있다.
미디어 콘텐츠는 미디어 소비자가 판단하고 평가한 뒤 수용 여부를 선택한다. 특히나 미디어 2.0 시대의 콘텐츠 소비는 주는대로(push)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닌 내가 필요한 것을 끌어당기는(pull) 시대가 아닌가. 왜 당신에게 주목해야 하는지, 그리고 당신에게 쏠리는 관심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는지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콘텐츠, 주장, 의견, 반박, 비판에 매몰돼 독자를 왕따시켜버리고서는 어떻게 공감을 얻겠는가.
이것이
미디어 2.0은 공감 네트워크라고 꾸준히 이야기한 근거다.
단지, 그 순간, 그 콘텐츠에 한해서, 그리고 그 당시 독자들의 상황에 따라 그 콘텐츠를 만들어낸 당신에게 주목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회 전체가 당신에게 매순간 열광하리라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미디어의 발생은 '선언'에 의해 가능하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은 '메시지 발송'에 의존하지 않는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소비자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매스미디어는 소비자가 좀더 많이 판단할 만큼의 수용자 수를 갖췄기 때문에 '공적 매체'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사적 매체이지만 언제든 공적 매체가 될 수 있는' 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공적 매체이고 싶겠지만 아쉽게도 가능성만으로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대체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과다하게 보여주는 블로거들을 종종 만난다. 미디어 영향력을 수평적으로 비교해보면 개인 미디어는 절대 미디어 1.0 세력인 매스 미디어를 넘어설 수 없다. 단지 특정한 영역에서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사안에 대한 이야기가 특정한 수용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뿐이다. 그것이 쌓이거나 폭발하는 순간 사회적인 영향력이 되는 것이고 다시 사회적 영향력은 지리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벤트가 트렌드로, 다시 문화에서 역사로 이어지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모른다. 단지 잊지 않고 살아갈 뿐. 그래서 미디어는 브랜드가 필요하고 역사성이 필요하며, 근본적으로는 신뢰감을 획득해야 한다. 그래야 수용자들이 처음부터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권위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의 혁명과 개혁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법칙일 뿐이다.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영웅을 만들 수 있지만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시스템 안에서 존재하는 단순한 입력기 또는 출력기 부속품이 아니다. 메시지가 발신되고 나서 이 메시지가 시스템 속에서 자유롭게 유통되고 대다수 수용자들이 이 메시지에 공감하고 수용되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영향력을 발현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과 관행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탓할 필요도 없다. 세상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옳다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예전보다 많아졌을 뿐 본질적인 콘텐츠의 내재적 가치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세상을 바꾼 사람이 언젠가 내 글을 읽었던 사람일 가능성을 너무 낮게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세상을 바꾼 65개 편지>라는 책이 주는 교훈은 누구나 편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뀐 이유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편지였더라는 식이다.
인터넷은 다양한 공감 시스템과 집단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만 수용자의 판단과 평가, 수용 및 동조 여부까지 완벽하게 제공할 수는 없다.
세상을 향해 편지를 쓰자. 단지 답장이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올 것이고 그 편지가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란 너무 큰 기대를 걸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