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해외의 한 여론 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 가운데 사람들을 가장 짜증나게 만드는
용어에 대한 조사였는데 1위는 온라인 분류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포크소노미(Folksonomy)였다. 2위는 블로고스피어, 3위는
블로그, 4위는 네티켓이었다. 그리고 5위 역시 블로그와 관련된 단어로 블로그에 올라간 내용을 엮은 책을 뜻하는 '블룩(Book
+ Blog, Blook)'이었다. 그외에 동영상 블로그인 블로그(Vlog), 소셜네트워킹, 쿠키, 네티켓, 온라인 세미나란 뜻의 웹비나, 팟케스트, 위키, 아바타, UCC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5위를 차지한 블룩이란 말은 2002년 8월 웹사이트 '버즈머신'을 운영하는 미국 저널리스트 제프 자비스가 만들어낸 말로 <블룩(Blook)>
이란 책이 발간되면서 유행되기 시작했다. 미국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블룩이 20%를 차지할 정도로 블룩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일본 역시 블룩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만 인터넷 콘텐츠를 엮어 책으로 펴내는 '넷셀러'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흥행성 검증받은 내용 출판 '일거양득'
블룩의 유행은 단지 온라인에서 유명하거나 인기를 끌고 있는 내용을 책으로 펴낸다는 의미를 넘어서 출판사의 새로운 저자 발굴 필요성과 안전한 아이템을 출판하려는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유명하거나 반응이 좋은 콘텐츠를 책으로 엮어 출판하는 경향은 만화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감자도리', '순정만화', '위대한 캣츠비', '게임회사 이야기', '마린
블루스',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만화는 모두 매일 인터넷으로 연재되는 컷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고
오프라인에서도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인터넷 만화의 원조이자 단행본으로 출간된 인터넷 만화의 선구자 격인 작품은 1997년부터 권윤주 씨가 개인 홈페이지(www.snowcat.co.kr)에 연재한 만화를 엮은 <스노우캣 다이어리>(권윤주, 애니북스). 달력형식의 홈페이지에 일기체 만화를 올려 이전에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인터넷 만화 연재의 형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 블로그에 연재된 만화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경우로는 2005년 말 출간된 <게임회사 이야기>(이수인, 에이콘출판)를 들 수 있다.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게임 기획자 이수인 씨가 2004년부터 <게임회사 이야기>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글루스 블로그(neverwhere.egloos.com)에 연재한 에세이 형식의 만화를 모은 것이다.
<게임회사 이야기>는 2005년 가장 많이 링크된 블로그로 뽑히는 등 블로거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 덧, 이 부분에 대한 이견 제시가 댓글에 있었습니다. 본문에 반영합니다. 오영욱 2007/10/26 14:31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이수인씨의 게임회사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연재가 되었지만 실제로 연재된 곳은 게이머즈라는 게임잡지입니다. 실제로 만화 연재도 잡지에 연재된 이후에 업데이트 되었구요. Blook의 예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것 같군요.
이외에도, 다음 창작만화 카페(cafe.daum.net/papepopo)에서 연재돼 인기를 누렸던 순수한 청년 파페와 착하고 여린 포포의 예쁜 사랑을 담은 만화 <파페포포 메모리즈>(심승현, 홍익출판사)는 2002년 출간되어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
www.marineblues.net)를 통해 소개되어 인기를 끈 <마린블루스>(정철연, 학산문화사)도 2003년 출간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카툰 에세이집 <포엠툰>(정헌재, 청하출판사) 역시 개인 홈페이지(www.bburn.net)에 올렸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으로, 2003년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요리 블룩의 원조 격인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는 '독신남이 직접 해 본 쉬운 요리'를 표방하면서 2003년
출간돼 지금까지 간편한 요리책 발간 붐을 이끌어오고 있다. 이후 <베비로즈의 요리 비책>, <꼬마마녀의 별난
빵집>, <야옹 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는 주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유명한 박경철 씨의 경제에세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를 비롯해 미술 에세이인
<그림 읽어주는 손가락>,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장사 체험담을 간추린 <머리핀 장사에
돈 있다>, 괴담집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와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등 다양한
블룩이 선보이고 있다. 20대 여성의 고단한 삶을 기록한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 유쾌한 일본 여행기를
담은 <이랏샤이마세 도쿄>, 사회심리학 박사 이철우씨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유멘시아'라는 블로그 내용을 토대로
<나를 위한 심리학>이란 책을 펴냈고 등 역시 실용서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블룩의 소재를 보여주고 있다.
블루커와 출판사의 '동상이몽'
출판계가 블로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블로그의 콘텐츠의 인기도나 독자 반응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매일
단일 콘텐츠 소비만 이뤄지는 온라인의 특성상 모든 내용이 같다고 해도 깔끔하게 한 권으로 펴내는 책의 소비를 오히려 촉진시킬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출판업계에서는 이미 온라인에서 유명한 블로거의 경우 책을 출간하게 되면 자신의 블로그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 이에 대해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초기 마케팅과 홍보 역시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블로그에 예약 판매 등의 이벤트만
걸어도 초판 물량이 소화될 정도로 이들 블룩 저자 블로거(블루커, Blooker)의 힘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같은
블로거들이 서평을 서로 올리면서 입소문을 확산시키는 등 블로그를 통한 저자 확보 이외에도 출판사에서는 블룩 출판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블룩의 유행에 대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블로그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몇몇 블로그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영입 작전을 벌이고 있는 출판계에서는 유명 블로거들이 점차 자기 권리 확대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인세를 올려달라거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기성 유명 저자급의 조건을 걸기도 한다는 것.
반대로 블로거들은 출판계의 블룩 출판에 대한 제안을 덥썩 받아들였다가 출간 일정이 늦춰지거나 반복되는 원고 수정 작업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많다는 것.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 없이 엮어서 책으로 낼 것이란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책이
진행되면서 일관성 있는 책의 흐름을 정하기 위해 자신이 쓴 글을 반복해서 수정하는 고통스런 작업에 대해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블룩을 펴내고 있는 한 출판사 기획자는 "기획형 블룩이 남발되면서 초기의 신선함도 떨어지고 있고 블로그 운영이나
소통에는 관심 없고 단지 책을 쓰기 위한 용도로 블로그를 이용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책을 쓰고 나서는 블로그 운영을
중단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온오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콘텐츠 사례로 불리는 블룩. 하지만 소재가 다양하지 않다거나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에 치우쳐
있다는 점은 출판계에서 꾸준히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1인 미디어인 블로그를 마치 신인 작가를 위한 양성소쯤으로
여기는 풍토 등 블룩이 넘어야 할 산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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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미래> 10월호에 기고한 것이므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글이 쓰여진 시점이 9월 중순이므로 현재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한 달 전에 써놓았는데.. 공개 시기가 늦었습니다.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