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아이콘에 얽힌 그만의 사연

Ring Idea 2007/10/18 00:48 Posted by 그만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9/11 테러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의 일이다.

미국에게 9/11은 자국내에서 벌어진 가장 처참한 외세 침략이었다. 남의 나라, 남의 대륙에서만 전쟁을 해온 미국의 역사상 처음 있었던 자국내(내륙) 피해에 경악했다.(진주만은 미국 본토와 많이 떨어져 있다)

다들 알다시피 이후 미국은 다시 9/11 테러 희생자들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탈레반을 축출하면서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물론 못 잡았다.

그리고 다시 이라크를 침공한다. 미국에게 눈엣가시였던 이슬람 과격 정파와 이스라엘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였던 나라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정권을 바꿔 놓는다. 미국에 의한 해방을 현지인들이 바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은 그들이 그것을 바랬다고 말한다. 물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가 빈 라덴의 후원자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는 것은 미국내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른 바 명분도 없고 감춰진 실리만 있는 전쟁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지각있는 언론들의 논조는 미국 정부의 무차별적인 전쟁 광기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언론사들 역시 미국의 패권 주의에 대해 경고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내에서는 일부 신문사 사이트에서 '반전' 배너를 걸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나라에 파병을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국내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촉발되던 시기였다.

그만이 외신 IT 전문 매체에 다니면서 수석기자로 일하던 때였다.

편집장과 그만을 비롯해 소속 기자들도 미국의 이러한 패권주의에 매우 불편해 했다. 그리고 '반전' 아이콘을 플래시 레이어로 띄우기로 결정했다. 지각 있는 언론사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언론인의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독자에 대한 우리의 솔직한 양심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미국이 본사였던 외신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No War'라는 아이콘을 띄웠다.

그런데 하루나 지났을까. 일본인이자 아태지역 담당 관리자가 급하게 연락을 취해왔다.

"우리는 언론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반전 구호는 당장 내려야 한다"

경영진과의 회의가 있은 후 우리는 어쩔수 없이 그의 주장에 수긍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말도 맞았고 우리의 양심이나 행동도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가치와 시각의 차이였다.

언론은 어디까지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언론인으로서 양심이 시키는대로 한 행동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언론인으로서 내가 바라보는 시각은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파가 장악한 미국에서조차 본사 기자들은 부시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꼬집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냈고 전쟁을 게임처럼 중계하는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사를 썼다.

언론의 중립성과 객관성, 불편부당성, 공정성에 대한 구호가 얼마나 허망한지 그만은 알고 있다. 오히려 언론들마다 이러한 구호를 벗어던지고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시각에 대해 떳떳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이 언론인들 스스로 양심에 따른 판단이었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조직의 강요나 조직적인 이해관계에 따라(또는 조직 분위기에 따라)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중에 다시 자신의 기사를 읽을 때도 언론인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을 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이다.

후일담이지만 'No War'가 아닌 '전쟁 반대'라는 한글로 된 아이콘이었으면 일본인 매니저는 그 것이 무엇인지 한 참 후에나 알았을텐데...

문화일보 노사가 요즘 신정아 누드 게재에 대한 신문윤리위원회의 사과 명령에 대한 이행 여부를 놓고 불편한가 봅니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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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00:48 2007/10/1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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