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에서 타사, 또는 타인과 협상을 진행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게임인지 인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게 된다. 처음에는 공평한 룰이 둘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지만 결정권자가 2명, 혹은 그 이상일 경우에 그 복잡한 상호 이해에 대한 절충은 불가능에 가까와진다.
그러다가 어느 덧 사람들은 평형을 찾아가기도 한다. 컨텐츠 가격에 대해 어떠한 룰도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콘텐츠 유통사와 생산자 사이에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진다. 더구나 이들 주위에는 더 다양한 경쟁자들이 각 단계마다 포진돼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공급 가격을 정해야 할 것인가. 과연 우리는 유일무이한 선택의 대상인가 평범하고 대체 가능한 대상에 불과한가. 끊임없이 사고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결정 내리는 프로세스는 '무작위성'에 가깝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라도 이 선택을 되돌아보며 괴로와 하지는 말자. 무작위, 또는 랜덤 전략도 전략이니까. 다만 그것을 전략으로 사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확신이 있다는 전제에서 랜덤도 전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위, 바위, 보 게임에 전략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랜덤'일 수 밖에 없다. 가위를 4번, 바위를 4번, 그리고 보를 2번 내기로 마음을 먹고 문득 초시계를 보면서 무엇을 낼지 정한다면 상대는 패턴을 읽기 힘들 것이다. 상대가 어떤 패턴으로 낼지 예측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급적 상대가 어떤 패턴으로 낼지 예측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내는 수 역시 읽히지 않는 것이 평등한 조건을 만드는 길이다. 어차피 매번 수를 낼 때마다 이길 확률은 1/3로 같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전략적'이란 말을 허투루 쓰지 못하게 하는 후유증'전략'이란 말을 참으로 많이 써왔던 사람에게 이 책은 조금은 난감할 수 있겠다 싶다. 죄수의 딜레마라든가 공공재의 비극 등의 사례는 웬만한 경제, 경영 서적에서 단골로 등장하니 그러려니 하는데 가위바위보 게임이라거나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숫자게임, 경매, 직원 관리, 또는 투표행위와 같은 매우 심리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역시 수치화시켜서 왜 어떤 것이 전략적으로 우월한 선택인지 설명한다.
이 책은 그래서 복잡하고 어려워 보인다. 서평이 칭찬 일색인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어려운 책을 읽었고 잘 이해했다고 스스로 납득시키려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 책의 독자일 수도 있겠고 적어도 무려 25000원에 달하는 책을 사놓고 '잘 모르겠다'거나 '어렵기만 했다'고 말하기에는 창피해서 긍정적인 서평을 올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 바 심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 처럼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겐 있으니까.
하지만 내겐 정말 졸립기 짝이 없는 책이었다. 쉬운 사례를 숫자와 도표를 통해 어렵게 만들었다. 놀랍지 않은가. 되돌아보면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고 지루하고 복잡하게 엮어놓았고 말을 베베 꼬아놓아서 '아닌 것이 아니라 결국 아닌 것은 아닐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식으로 읽혔다.
미안하지만 함부로 덤비고 가볍게 읽을 요량이라면 다른 좀더 쉽게,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좀더 싼 책을 골라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게임이론' 책은 많으니까.
아, 그럼에도 이 책에 난 별 네 개를 달아줘야겠다. 나중에라도 이 책에 복수하는 길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여야 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 책은 내게 만원 지하철을 탈 때도 열차 하나를 그냥 보낼지, 두 번째 열차를 타야 할지 선택할 때는 물론, 차 안에 어느 자리가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인지 고민하게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책 내용이나 서술 방식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답답했지만 이 정도 자극이면 최소한 조금은 매사에 영리하게 생각하며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 정도로도 이 책의 가치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