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할 수 있다. 우리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확신하여 주장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
어떤가. 우리에게 기본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 아니냐'고.
이런 경우를 상상해보자. 나는 진실을 모른다. 나는 또 다른 진실이라는 것을 들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는 내 안의 확신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거짓말이나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나의 확신은 잘못된 것이 되거나 다수에 의해 소수 의견으로 판명날 수 있다.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수많은 진실은 어떠한가. 수 차례의 쿠데타, 민간인 학살, 공권력 남용, 민간인 사찰과 감금 폭행. 의심만으로 우리는 이야기 할 수도 없었고 그런 의심을 한다는 것 조차 용납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자, 나는 말할 수 있는가. 말할 권리가 있는가.
책임론자들은 '일단 입 다물라'고 할 것이고 인권 옹호론자들은 '일단 말하고 싶다면 말하라'고 할 것이다.
자기 안의 확신과 자기가 믿으려 하는 것(또는 굳게 믿는 것)을 발설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권리'라고 하여 '보호 받아야 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법은 이상하다. 이중잣대다. 말하는 것이 범죄인 경우의 수를 만들어 놓았다. '의견'은 말할 수 있으나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가진 '허위의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 '공익을 해할 목적'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는가. 그리고 그 '허위'가 밝혀지기까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
그래서 전통적인 언론계 인사라면 '일단, 말하라'고 하고 '그리고 따져라'고 한다. '따지기만 할 경우', 우리는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 모르는 복잡하고 숨겨진 사안의 경우 우리는 '현상'과 '사실'만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 진실은 밝혀낼 가능성이 없는 일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자, 우리는 유추할 권리를 갖는가. 그 유추를 남에게 말할 권리를 갖는가.
말할 수 있는 자유는 기본권
분명히 말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말할 권리'는 '침묵할 권리'와 마찬가지로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포털의 자율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 25일, 경찰청이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불법콘텐츠'라며 삭제를 요청한 인터넷 글에 대해 자체 심의를 거쳐 "삭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스스로 '언론'임을 부정하면서까지 정부의 삭제 명령과 이용자 정보 제출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포털 사업자들이 내린 결정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 높은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뉴스는 현재 노컷뉴스, 경향신문, 파이낸셜뉴스, 뷰스앤뷰스, 아이뉴스24, 디지털데일리, 이데일리 정도의 인터넷 언론사 위주로 보도됐다.
포털 뉴스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 뜯던 주요 신문들 조차 침묵했고 방송사들은 예외 없이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시각도 비추지 않았다.
이 결정은 향후 포털 및 인터넷 뉴스 유통사들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과 이용자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을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자율기구는 국가기관의 판단에 '옳고 그름'을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셈이다. 이는 이 자율기구가 출범할 당시에 다짐했던 '정부 기관의 무분별한 이용자 글 삭제 요청에 대해 제동을 걸겠다고 말한 것을 지킨 셈이다.
'공익을 해할 목적'은 누가 판단하는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지난 해 이맘 때쯤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 "앞으로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로 간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공인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임시조치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이번 경찰의 천안함 관련 글에 대한 삭제 조치 요구는 민간 사업자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민간 사업자들에게 그들의 소비자인 이용자들이 전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글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라고 명령한 셈이다.
따라서 이런 명령은 따를 필요가 없으며 더구나 이들 글이 '명백한 허위'라거나 '공익을 해할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자의 글을 차단할 법적 구성 요건 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경찰의 요구를 거부키로 한 것이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 기구가 밝힌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보면 다음과 같다.
<13건의 결정내역문>
[결정내역] 본 게시물은 천안함 관련 정부 당국의 조사결과와는 달리 ‘미 잠수함과의 충돌설’ 등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서 심의 결과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해당없음’으로 결정한다.
본 게시물은
1. 해당 게시물이 ‘불법게시물’이라는 법적 근거에 대한 소명이 없다.
2.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에 의하더라도 해당 게시물의 내용이 ‘허위사실’일 뿐만 아니라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나, 이와 관련된 소명이 없었다.
3. 법원이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 휴교령 문자메시지 사건 등에 대해 ‘공익을 해할 목적’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가 있다.
<1건의 결정내역문>
[결정내역] 본 게시물은 단지 정치적 관점의 비난성 게시물에 해당하고 의견을 표명하는것에 불과하므로‘해당없음’으로 결정한다.
우리는 어제 MBC PD 수첩을 보면서 대한민국 현실이 마치 상상속의 어처구니 없는 가상의 나라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공권력의 힘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과연 우리 개인들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인하고 피해자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역으로 공격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말할 수 있는 권리'의 실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고 알고 있고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선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권리이다.
경찰이 월권한 것에 대해 민간 업체들의 자율기구가 명확히 법적인 근거를 들어 거부한 것은 당연한 판단이다. 개인적으로 환영한다.
* 평가가 너무 오바라구? 그동안 포털들이 기성 언론과 정부 기관에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이건 '사건'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