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들은 블로그가 필요했지만 블로거에게 정작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언론사 자사 기자 블로그를 특별대우하고 기타 회원 블로거들은 그저 '사용자'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누가 협력 관계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뉴스사의 하부구조로, 또는 여기저기 국가가 신상정보 내달라면 넙죽넙죽 내어주는 포털사의 플랫폼 종속 사용자로서 블로거는 남아 있었습니다.
심지어 신문법(나중에 심도있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에서는 블로거 따위나 게시판 사용자 따위의 글을 뉴스와 뒤섞어 배치하지 말라는 놀라운 조항도 있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그래서 이런 현황을 좀 뒤집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뉴스'와 '일반 이용자들이 쓴 글'을 동일한 영역에 배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죠. 다들 놀라더군요. 그런 게 있냐며... ㅋ 심지어 그런 조항을 담고 있는 법까지 있냐며...
네, 전세계에서 사례가 없는 특이한 케이스인데요. 이 법은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뉴스를 매개하는 포털을 '인터넷뉴스서비스'라 이름짓고 따로 규제하는 유일한 법이기도 하고 '인터넷뉴스서비스'는 '뉴스 기사와 독자와 이용자가 전달하는 '의견'을 표시할 경우 명확하게 구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법입니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http://www.lawkorea.com/client/asp/lawinfo/law/lawview.asp?type=l&lawcode=b730868
제10조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준수사항)
①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기사배열의 기본방침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그 기본방침과 기사배열의 책임자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개하여야 한다.
②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독자적으로 생산하지 아니한 기사의 제목 · 내용 등을 수정하려는 경우 해당 기사를 공급한 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③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제공 또는 매개하는 기사와 독자가 생산한 의견 등을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구분하여 표시하여야 한다.
④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제공 또는 매개하는 기사의 제목 · 내용 등의 변경이 발생하여 이를 재전송받은 경우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인터넷홈페이지에 재전송받은 기사로 즉시 대체하여야 한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준수사항) ① 법 제10조제1항에 따라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제공하는 인터넷뉴스서비스에서 언론의 기사를 연결하여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화면 중 연결 단계구조의 최상위 화면에 기사배열 기본방침과 기사배열책임자를 공개하되, 기사배열 기본방침의 구체적인 내용은 해당 화면이나 별도 화면으로 연결되어 볼 수 있도록 제공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사배열 기본방침과 기사배열책임자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1.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가 기사배열 등 편집에 관여할 수 없는 형태로 언론의 기사를 매개하면서 그 사실을 해당 화면에 표시한 경우
2.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가 제7조제3호에 따라 등록이 제외된 경우
② 법 제10조제3항에 따라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그가 제공 또는 매개하는 기사와 독자가 생산한 의견 등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
1. 개별 기사에 대한 독자의 의견은 기사와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표시할 것
2. 동일 서비스 영역에서 제공 또는 매개하는 기사와 독자가 생산한 의견 등이 함께 실린 경우에는 명확히 구분될 수 있도록 표시할 것
내용상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언론사의 기사 속에 일반 이용자들의 의견이 뒤섞이면 여러모로 과격한 발언이나 선정적인 콘텐츠, 또는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토론들이 벌어지곤 하니까요. 특히 공무원들 입장에서 '루머'와 '음모론'이 판치는 아고라와 블로그 글이 뉴스와 뒤섞일 경우 독자들이 혼란스러울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포털, 아마도 미디어 다음이 처음으로 시도를 했을 겁니다. [블로거뉴스]와 [아고라]라는 표시를 달고 메인 페이지 뉴스 영역에 이용자들의 글을 게시한 것입니다. 앞에 괄호로 구분하면 될 것이란 생각이었나봅니다.
그리고는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메인 뉴스 영역에서 [블로거뉴스]와 [아고라]라는 표시 조차 '명확한 구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당국의 해석 때문에 미디어 다음은 이 두 서비스에서 나온 글을 메인 뉴스 영역에 배치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아고라]의 경우 뉴스 모듈 안에 탭 형태로 있었지만 이마저도 하위로 빠져버리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소식'을 담은 '뉴스' 모듈에 '이용자의 의견'이 더 많은 '아고라'는 같이 배치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었죠.
◆ '아고라' 다음 초기화면서 삭제될듯 [연합뉴스] 2009.02.10
'블로거뉴스'도 '다음뷰'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은 결국 '블로거'들이 쓰는 글이 '뉴스'일리 없지 않냐는 당국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것이 다음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메인에서 별도의 섹션으로 분리독립되었지만 결국 다시 맨 하단으로 밀려났죠. 보통 메인 화면에서 하단의 클릭 비율은 상단의 10분의 1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포털에서는 기존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 영역에서는 블로그와 아고라 등의 네티즌의 의견이 섞일 수 없고 반대로 아고라와 블로그 영역에서는 기존 저널리즘 참여자인 언론사와 공공단체, 기업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포털에게 언론사로서의 책임을 강화하라며 만든 조항이지만 누가봐도 일반 시민들의 포털 내부에서의 언론 권력과의 비대칭성을 공고히 하자는 조치임이 분명한 것이죠.
기존 영향력 영역에는 새로운 미디어 참여자를 포함시키길 거부하면서 오히려 새롭게 형성되는 영향력 영역은 규제하고 자유롭게 침범하여 경쟁할 수 있게 돼 있는 상황입니다. 다음뷰에는 언론사들과 기업, 관공서 공식 블로그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죠.
결국 각종 규제와 통제는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저널리즘 행위, 또는 의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 자체가 위축되거나 극도의 자기 검열을 거치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실명제 하에서도 악플은 줄지 않고 전체 의견제시만 줄어든 꼴만 조성됐습니다.
말도 함부로 하지 말고, 돈도 벌지 말고, 기존 미디어 영역을 넘보지도 말라면서 개인으로서 무한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 정부와 언론사들이 블로거들을 몰아세우며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죠.
선거법, 신문법,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모두가 상시적으로 블로거를 겨냥해 불리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블로거를 보호해줄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특정한 툴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것 자체도 우습긴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미디어임을 자부하고 미디어적 활동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자율적으로 협회 등을 통한 최소한의 자율 인증을 받게 하든 아니면 인터넷 신문 등록제 처럼 인터넷 매체로 등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언론인으로서 소속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풋내기 기자의 보도자료가 범람하는 언론사의 기사와 10년 넘게 해당분야의 글을 써왔던 전문가가 블로그에 쓴 글이 '명백하게' 분리되어야 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