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상정이랄까. 언론사들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기자들이 광고주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때 무덤덤한 경향이 있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최근들어 기자들의 의식조사에 나타나는 기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주체는 정치권력보다 광고주를 우선으로 꼽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조금은 다른 관점이고 오래된 글이지만 왜 기자들은 자신의 신조와 다른 기사를 쓰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글은 <미디어 2.0 : 미디어플랫폼의 진화>에도 자세하게 인용되었고 개인적인 경험의 수준에서 가장 적절하게 기자 개인들의 심리적 환경 요인을 분석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기자들이나 삼성 직원들은 왜 이렇게 사회적으로 명암이 분명한 사건에 있어서도 뚜렷한 입장 표명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엉뚱한 사안으로 눈을 돌려 보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이에 대한 좋은 언론계 자료가 있다.

영국의 미디어 학자인 허버트 갠즈는 1980년 "무엇을 뉴스로 결정하나(Deciding What's News, 1980)"이란 책을 통해 기자들은 왜 자신들의 양심을 지키지 못한 채 편집 정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참고

1. 제도적 권위와 제재(Institutional Authority and Sanctions)
발행인은 통상 신문을 소유하고 있으며 순전히 사업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신의 피고용인에게서 순종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발행인은 피고용인의 일탈을 이유로 해고나 강등을 할 힘이 있다...(중략)...제재를 원용하는 것보다는 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기자들이 순종하는 한 이유가 된다...(중략)...부장들은 편집방향에 어긋나는 기사를 무시할 수 있고,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기사를 '안전한' 기자에게 맡길 수 있다.

2. 감사하는 마음과 상급자 존중(Fellings of Obligation and Esteem for Superiors)
기자들은 자신을 고용한 회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기자들은 기사에 관한 가르침을 주었거나, 보호막이 되어 주었거나, 온정주의적인 호의를 베풀어준 편집국(보도국) 간부들에 대해 존경심 경탄 고마움 등을 느낄 수도 있다.

3. 지위 상승 열망(Mobility Aspirations)
모든 젊은 기자들은 지위 상승의 희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편집정책을 위반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몇몇 기자들은 승진을 위한 좋은 방법은 1면에 큰 기사를 싣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편집정책에 위반되는 기사를 쓰지 않음을 의미한다.

4. 편집정책 반대 집단의 부재(Absence of Conflicting Group Allegiance)
기자들을 위한 가장 큰 정식 조직은 '미국신문조합(ANG)'이다. 이 조합은 편집정책과 같은 내부 문제에 대해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았다. 조합은 편집국(보도국)과는 무관한 조합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강조했다. 일단의 기자들이 편집정책에 관해 집단적인 반대에 나섰다는 증거는 없다.

5. 기자 직업의 즐거움(The Pleasant Nature of the Activity)
ㄱ. 편집국에는 집단적 소속감이 있다 : 기자는 편집자에 비하면 낮은 지위를 갖고 있지만 근로자로 취급당하지 않는다. 기자는 오히려 편집국 간부들과 함께 일하는 '공동 작업자(co-worker)'이다. 편집국 기자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기사를 수집하는' 업무를 놓고 서로 마음이 맞는 상태에서 협력한다.
ㄴ. 기자 업무 수행은 흥미롭다.
ㄷ. 비금전적인 특권이 있다.

6. 뉴스는 가치가 된다(News Becomes a Value)
기자들은 24시간마다 소위 '뉴스'를 생산하는 게 그들의 일이라고 말한다. 뉴스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생산돼야 한다. 뉴스 생산은 계속적인 과업이다. 기사를 중심적 가치로 중시하다 보니 편집방향과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객관적 보도에 대한 관심을 보류한다. ..(중략)...그들은 사호 구조를 분석하는 것 때문에 보상받는 게 아니라 뉴스를 얻는 것 때문에 보상받는다.


기자, 미네랄 캐러 생산되는 전투력 없는 SCV 운명

전직 기자인 그만에게 이런 냉철한 요인 분석은 매우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이는 여느 직장인들의 심정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중앙일보를 욕하기 힘든 점이 이런 것이다. 중앙일보라는 태생 자체가 삼성과 떼어낼 수 없는 구조인데다 그 구조를 인지하고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편집행위가 빈번한 곳에서 기자들의 독자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다시 뉴스를 수집하러 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미네랄을 캐내는 SCV 처럼 말이다.

기자라는 직업인의 비극은 이러한 편집 정책에 순응해가는 과정에서 자율성과 독립성 사회성이 점차 결여되어 간다는 점이다.

2007/11/10 기자들은 왜 편집정책에 동조하는가?

자, 그렇다면 조직이나 개인적인 목적의식에 의한 요인 말고 기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광고주와 기자들은 상호 어떤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과연 그렇게 끈끈하게 맺어져 있을까?

아래 내용은 <한국언론학보> 54권 6호에 실린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배정근 조교수가 발표한 <광고가 신문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그 유형과 요인을 중심으로>에서 발췌했다.

이 논문은 짧지만 직접적인 언론사 간부들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광고주의 영향력과 광고주와 언론의 결탁 내지는 은밀한 관계를 직접적인 인터뷰를 통해 증명해내었다.

일단 언론재단이 펴낸 <한국의 언론인 2009>에서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요인을 영향력에 따라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적는 조사에서 광고주는 종합 응답합계에서 60.8%로 가장 높았다는 사실을 전제해둔다.

이 논문의 특징은 기자들과 광고주와의 인터뷰가 주요 내용이라는 점인데, 주요한 내용만 덤덤하게 옮겨와본다. 아쉬운 점은 내용에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들이 모두 익명이라는 점이다.

“메이저를 제외한 대다수 신문사들은 대기업 광고가 끊기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다. 진보적이라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마저 삼성의 광고중단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은 것 아니냐. 심하게 말해 대기업의 시혜를 받아 살아가는 구조다.”(A국장)
“외환위기 이전에는 신문에 광고를 내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신문사들이 광고를 내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편집국 간부들의 광고 부탁도 잦아지고, 그러다보니 기자들의 태도도 매우 협조적으로 바뀐 게 사실이다.”(T상무)
“광고주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사는 오너 관련이다. 그리고 기업의 범법사실이나 노사관계, 타사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기사의 경우에도 강한 압력을 가해온다.”(D부국장)
“대기업은 부정적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를 주로 하지만, 중견․중소기업들은 홍보성 기사를 내달라는 부탁이 절대적으로 많다.”(N기자)
“원래 특집섹션은 먼저 기사의 테마를 잡고, 거기에 맞는 광고주를 찾아 광고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광고를 세게 한다는 곳이 있으면 그 기업에 맞춰 섹션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N기자)
“광고 특집은 부서마다 매달 할당돼 있다. 광고와 무관한 부서의 경우 광고 유치성 기사를 기획한다.”(I기자)
“자동차 회사로부터 3억원의 협찬을 받아 3회 시리즈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솔직히 기사를 쓰면서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G차장)
“회사 수익증대에 크게 기여한다 해도 누가 높이 평가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후배들로부터 ‘기자의식이 없는 선배’라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회사 경영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G차장)
“광고주의 요구를 반영하다보니 경제면이 대기업 기사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로 채워지기 일쑤다. 중소기업의 활동을 소개하는 기사는 물론 대기업 횡포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정면으로 다루는 기사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F차장)
“신문의 생명은 신뢰다. 그런데 신문이 대기업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고 광고주에 편향된 기사를 쏟아낸다면 자멸을 자초하는 것이다.”(J기자)

이 논문은 "기자들은 광고가 언론 본연의 기능 수행을 심각히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로 인해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광고의 영향을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선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는 타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정리했다.

기자들이 원칙에서 한발씩 생존을 위해 물러설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또는 누구든 생존하지 못하는 언론사 안에서 고고하게 저널리즘을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기자들의 속성상 '남의 평가'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논문에서도 말하듯이 언론사의 재정상태와 경영여건, 그리고 소유구조와 이념적 성향들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노조나 젊은 기자들의 문제제기 같은 내부 견제와 시민단체들의 지적 같은 외부 견제가 광고주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거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언론사들이 요즘 처럼 '생존'에 대한 니즈가 강하게 발휘될 때는 다른 어떠한 사회적 요구도 그들의 합리화를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외부에서 적절하게 언론사를 비판해주고 평가해주고 옳다고 느낄 수 있는 자료 제공과 의견 제공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언론사들을 '포기'하는 태도라거나 '의도적인 악을 행하는 집단'과 같은 이념적인 공격은 상호 설득하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전업 언론사들은 사회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제아무리 소셜화된 사회라지만 정보 전달자로서의 기능의 중요성도 여전하다고 본다. 언론사들이 기존 '생산성'과 '효율성', '수익성'에 몰입하는 산업에 편입되면서 생겨나고 있는 최근의 '생존'을 핑계로 '저널리즘을 조각 파이처럼 팔고 있는 타협 행위'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어야 한다.

반대로 '생존'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기다. 지금처럼 종편으로 나아가서 덩치를 키우는 방식의 '메가미디어'도 답이 아니고 '소셜미디어'에 천착하고 '마이크로미디어'로 변신하는 것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언론사'를 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사회적 가치'를 존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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