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국 언론의 비전문적인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끄러운 기사가 일제히 인터넷과 지면에 게재됐다. 일단 어떤 언론이 어떤 기사를 썼는지 읽어보기 바란다. 네이버 뉴스 코너에서 ‘알렉사’로 검색한 결과다.

  • `인터넷강국` 흔들리나 [디지털타임스]
  • 무색해진 ‘한국=인터넷 강국’ [한겨레]
  • 인터넷코리아? 이젠 옛말!…세계500大사이트 2년새 134→16개로 [동아일보]
  • 앗~ 홍콩에도 밀려버린 인터넷 한국? [데이터뉴스]
  • '한국=인터넷 강국' 맞습니까 .. 세계 500대 사이트 16개 [한국경제]
  • 한국사이트 랭킹 日·홍콩에 뒤져 [문화일보]
  • 한국 IT강국 맞나? [헤럴드경제]
  • 한국, 인터넷순위 일본, 홍콩에도 '추월' [아이뉴스24]
  • `한국 닷컴'의 몰락 [연합뉴스]

    제목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아니 홍콩에까지 밀리다니’라며 댓글을 올린 네티즌의 걱정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한 네티즌의 ‘이럴 줄 알았어’라며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식의 ‘근엄한 꾸중(?)’까지 읽다보면 한국 인터넷의 미래는 없는 것일까 하는 걱정까지 들게 된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이런 뉴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심치 않게 등장했었다. 아래 뉴스를 보자. 우리가 너무 빨리 잊어서 그렇지 아래 뉴스는 지난 해 7월 19일을 전후로 등장했었다.

  • ‘인터넷 한국’ 위상 추락 [서울신문]
  • 인터넷 사이트 세계순위 급락 중국은 美제치고 1위에 올라 [국민일보]
  • 한국사이트 세계 10밖으로 [한국일보]
  • 인터넷 한국, 중국에 밀렸다! [데이터뉴스]
  • 한국, 세계 인터넷시장서 3위로 밀려 [한국경제]
  • 한국 인터넷 몰락 [매일신문]
  • "한국인터넷 퇴조"..계명대 벤처창업보육사업단 [한국경제]
  • 한국, 세계 인터넷사이트 순위 급락...중국, 1위로 치솟아 [아이뉴스24]

    여기까지 오니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려 작년 이맘때쯤인 2004년 1월 26일 전후의 기사를 보자.

  • 닷컴 시장, '인해전술' 중국이 밀려온다 [오마이뉴스]
  • '인터넷 한국' 중국에 추월 당했다 [전자신문]
  • 인터넷 강국자리 중국에 내주나 [한겨레]
  • 한국 인터넷 강국 위상 ''흔들'' [세계일보]
  • 중국 상위 사이트 숫자 한국 앞질러 [한겨레]
  • 인터넷 강국 한국, 중국에 밀린다 [한국일보]
  • ‘인터넷 한국’ 中國에 밀린다 [국민일보]
  • "인터넷 강국 위상, 중국에 밀려" [MBN뉴스]

    이전에도 유사한 기사들이 등장했으나 여기까지만 살펴보자.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알만한 내로라하는 언론사들이 이렇게 한국 인터넷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보고 있구나 하는 업계 종사자의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거나 인터넷 업계의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 이 기사들을 소개한 것은 아니다.

    이 수많은 기사들의 근거인 알렉사(www.alexa.com)의 상위 500개 인터넷 사이트 목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다.

    모든 기사에 소개 돼 있듯 자료 출처는 명확하다.


      계명대 김영문 교수팀이 인터넷사이트 트래픽 측정업체 알렉사닷컴(www.alexa.com)의 2005년 1월 11일 기준 전 세계 500대 인터넷사이트를 국적별로 분류해 본 결과, 우리나라 국적 인터넷 사이트 중 500대 순위에 든 사이트 수는 16개로 5위에 그쳤다.
      ...(중략)...

      김영문 교수팀은 2002년 12월, 2003년 4월, 2003년 9월, 2004년 1월, 2004년 7월 등 총 6차례 이같은 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한국이 5위로 밀려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문 교수가 인터넷 관련 어떤 연구팀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영문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곳은 뉴비즈니스연구소(www.newbiz.or.kr)로 소호, 벤처, 외식, 소자본, 이비즈 등 창업 컨설팅을 위해 설립된 한국소호벤처창업협의회(soho.sarang.net)와 사단법인 한국소호진흥협회(www.sohokorea.org)의 부설 연구소이다.

    김영문 교수팀이 연구한 것은 그다지 대단한 연구방법은 아닌 듯 싶다. 알렉사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Top 500 Sites' 메뉴에서 'Global Top 500' 항목만 클릭하면 펼쳐지는 리스트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관심있는 독자들은 쉽게 하나둘씩 세어보면 될 일이다.

    사실 가관은 김영문 교수가 내놓은 원인과 대책이다. 뉴비즈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문가 컬럼 중 일부를 발췌했다.

    □ 원인과 향후 대책방안
    이렇게 한국의 인터넷사이트들이 전세계 500대 사이트에서 차지하는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벤처기업의 몰락
    한국의 닷컴 및 벤처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들의 급속한 감소를 들 수 있다. 전세계 500대 사이트 중에서 한국의 닷컴 및 벤처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들의 수를 살펴보면, 2002년 12월(1차 조사)에 83개, 2003년 4월(2차 조사)에는 86개, 2003년 9월(3차 조사)에는 64개, 2004년 1월(4차 조사)에는 46개, 2004년 7월(5차 조사)에는 15개로 큰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2) 한글 중심 서비스 및 해외시장 개척 등한시
    한국의 인터넷사이트들은 대부분 한글 중심의 서비스를 하고 있어서, 외국인들이 접속해도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인터넷사이트들은 대부분 한국이라는 국내 시장에서만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며, 해외시장의 개척을 등한시한 결과가 바로 한국 인터넷사이들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술의 절대 부족
    현재 한국의 포털 및 게임사이트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개발된 기술이나 제품이 아직은 세계시장에서 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자금력이 풍부한 벤처 혹은 포털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기술과 더불어 인터넷관련 기술 역시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김영문 교수의 글이 지적한 사항은 일견 맞는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인터넷 사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내용이 많다.

    알렉사 조사로는 한국 인터넷 평가 불가
    우선 현재 한국 인터넷 사업을 평가하기 위해 알렉사닷컴의 자료를 인용하면서부터 잘못된 결과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계속 알렉사닷컴을 근거로 한국 인터넷을 평가한다면 아마도 몇 년 안에 한국 인터넷 사이트는 알렉사의 상위 순위에서 한 두개만 빼고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조사 결과를 인용한 기사는 '한국 인터넷의 붕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겠는가.

    알렉사 닷컴의 조사방식은 툴바를 이용한 것으로 전세계 수백만명의 툴바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자발적인 툴바 사용에 대한 조사 오류에 대해서는 지난 번 컬럼인 ‘사이트 순위 논쟁 허와 실’에서 지적한 바 있다.

    과연 우리나라 사용자 가운데 알렉사 툴바를 사용하는 네티즌이 얼마나 될까? 또한 작년부터 국내 인터넷에 몰아닥친 스파이웨어와 애드웨어 경계 분위기와 맞물려 알렉사 순위에서 일제히 한국 사이트 순위가 내려앉고 있는 현상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애드웨어 제거 프로그램이 알렉사 툴바를 애드웨어나 스파이웨어로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다음, 네이버 등의 트래픽 그래프를 비교해보면 지난해 9, 10월을 기점으로 거의 같은 비율로 트래픽이 폭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이트닷컴의 경우 싸이월드 때문이라도 작년 트래픽이 성장곡선이어야 하는데도 작년 내내 트래픽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알렉사는 인터넷 초창기 넷스케이프에 기본적으로 트래킹 기능을 포함시키면서 그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넷스케이프 점유율의 하락 때문에 고민하다가 MS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탑재시키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무산됐으며 이후 툴바를 사용자가 다운로드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부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알렉사 트래킹 툴이 내장돼 있다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원래 인터넷 익스플로러 4.0 이후 도구모음에 있는 ‘검색’ 버튼을 눌렀을 때 관련 링크를 제공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후 ‘검색’ 버튼은 MSN이 독차지했다. 5.0 이전 버전에서 메뉴에 있는 '도구'를 눌러 '관련링크보기' 기능에 알렉사가 내장돼 있던 때에도 사용자들이 직접 이 기능을 실행시켜야만 동작하기 때문에 트래픽 추적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파이어폭스 등 넷스케이프 기반 브라우저에 자신의 툴바를 기본 내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태이며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의 인터넷 사용내역은 직접 툴바를 설치해야만 추적이 가능하다.

    적어도 국내 인터넷에서는 알렉사 순위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감안할 필요도, 또한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자료인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어 관련 사이트의 급부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부터 풀어보자. 중국은 지금 버블을 거치지 않은 인터넷 빅뱅이 진행중인 나라다. 미국만은 못하지만 중국발 스팸은 이제 전 세계인의 골칫거리가 됐다. 놀랍게도 세계 4위인 시나닷컴(www.sina.com.cn), 7위인 소후닷컴(www.sohu.com) 도메인 등은 한국에서도 스팸문제로 골치 아파하는 도메인이다. 스팸 때문에 트래픽이 올라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어와 중국어는 인터넷 인구가 늘면 늘수록 상위로 랭크되는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

    김영문 교수의 닷컴 및 벤처기업에 의한 사이트 운영이 줄고 있다며 ‘벤처기업의 몰락’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강한 거부감마저 든다. 당연히 500대 사이트 안에 드는 한국 사이트가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비율적인 현상에 대해 ‘몰락’이란 단어는 부적절하다. 또한 세계적인 사이트가 되려면 벤처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가 늘어야 한다는 말인지, 500대 사이트와 벤처기업은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두 번째로 지적한 한글 중심 서비스와 해외시장 개척을 등한시했다는 말은 일정부분 인정한다. 좀더 욕심을 내서 국내 사이트의 외국인 회원 등록 방법이 없다는 것 등도 지적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비즈니스는 미디어 비즈니스다. 한국내에서 서비스하려면 한국어 서비스가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하다. KBS가 미국에 방송한다고 해서 시청률 1위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일고 있는 닷컴의 해외진출에 있어서도 결국 그 도메인은 해외 도메인이 될 것이다. 야후 재팬(www.yahoo.co.jp)은 일본 도메인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술이 절대 부족하다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한국에서 개발된 기술이나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통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인터넷이 일부분 기술 개발에 의존하는 면이 있지만 기술보다는 마케팅 능력과 현지화 노력, 뛰어난 서비스 개발 능력이 더 요구되는 영역이다. 순위가 높은 중국 포탈이 기술력이 더 높다면 왜 국내 인터넷을 모방한단 말인가? 김영문 교수는 아마도 한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진단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문에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결론은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해석이다.

    잘못된 자료와 잘못된 근거는 당연히 잘못된 결과와 해석을 낳는다. 독자 여러분은 한국 인터넷이 몰락할 것이란 위기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한국 인터넷은 이제야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동면을 막 끝낸 상태다. 힘찬 도약만 남았다. 더 이상 스스로를 깎아 내리며 매조히즘에 빠져 자학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인터넷에 있어서는 외국인이 한국에 찾아올 때마다 칭찬해마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은 경계돼야 하지만 무턱대고 잘못된 근거로 자성하며 앉아 있기에는 인터넷 시계가 너무 빠르다. @ZDNe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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