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은 편집장 ( ZDNet Korea ) 2004/08/09
지금까지도 MP3 플레이어는 휴대폰과 더불어 청소년이 받고 싶은 선물 목록 상위에 있는 제품이다. MP3 플레이어는 MP3 CD 플레이어에 이어 플래시 메모리를 채택하면서 여전히 디지털 기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효자' 품목이다.
MP3 플레이어는 휴대용 기기의 발전상을 압축해 보여주는 제품이기도 하다. CD를 기록 매체로 사용하다가 플래시 메모리로 휴대성을 강조해 크기가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다시 용량 확대를 위해 1인치 초소형 하드디스크 기술의 도움을 받아 '아이포드'라는 걸출한 스타를 내놓게 됐다. 그렇다면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 시장의 미래는 누가 장악하게 될까?
일각에서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라는 기기가 시장의 차세대 주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MP3가 음악만을 위한 휴대용 재생기였다면 PMP는 앞으로는 영상을 담아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2.5인치, 또는 3.5인치 화면으로 20~40GB 용량의 하드디스크를 내장하고 있으니 영화도 수십 편은 너끈히 담아 다닐 수 있다. 영화보다 용량이 작은 뮤직비디오는 수백 편을 담을 수 있다. 그야말로 꿈의 기기 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IT업계가 늘 그래왔듯이' PMP에 대한 시장 전망에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이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 이야기는 뒤로 미뤄 두고 이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를 소비자가 구매해 사용해본다는 가정을 해보자.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이 안에 담아야 하는 영화는 어디서 구할까? MP3 플레이어가 그래왔듯이 이 기기 자체가 컨텐트 불법 유통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는 논외로 하더라도 DivX 형식인 AVI나 WMV, ASF 등의 동영상 파일 형식으로 이 기기에 유선이든 무선이든 저장해둬야 할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이 동영상을 전혀 보지 않았을까? 봤던 것을 작은 화면에서 또 보려고 이 기기를 사는 것일까?
또 휴대용이니만큼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화면을 번쩍이며 지하철 안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볼 수 있을까? 더구나 남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환경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동영상을 맘껏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기기를 들고 조용한 곳으로 가보자. 회사 사무실이나 도서관, 공원 벤치에 앉아 이 기기의 작은 화면을 뚫어지게 1시간 넘게 볼 자신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어쩌면 비유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초소형 휴대용 게임기인 GP32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겠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지금 공중파 텔레비전 휴대용 수신기나 휴대용 DVD 플레이어가 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텔레비전은 거실에서, 영화는 극장에서 본다. 영상 매체 자체가 가진 몰입도 때문이다. 영상은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사용해야 즐길 수 있는 매체다. 음악은 자동차 안이든 길거리든 도서관 안이든 어디서나 청각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매체다. 그래서 MP3 플레이어가 성장한 것이다.
지금 시장에 나오고 있는 PMP만 놓고 판단했을 때 대부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첫 결전에서 시장의 냉담함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해 하지만 굳이 사겠다고 덤벼드는 소비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물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기기를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는 시장은 컨텐트 유료화가 정착된 교육 시장이다. PMP라면 좀 더 현장감 있는 강좌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MP3 플레이어와의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면 휴대용 오디오 기기의 대체품으로서도 도전해볼만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PMP로 MP3를 누르겠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기술 위주의 환상에 불과하다.
노트북의 활용성을 극대화시켰다는 태블릿PC가 여전히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고 스마트디스플레이도 시장을 형성하지도 못한 상황에 PMP라는 작은 멀티미디어 복합 기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신기함' 그 이상이 되긴 힘들다. 신기함 자체로 시장이 돼 버리는 얼리어답터 시장을 노린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얼리어답터 시장에서 일반 시장으로 나오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신기한 기술이 모두 시장에서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미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하루 종일 원격 강좌를 듣고 쌍방향 디지털 TV를 통해 드라마를 보면서 쇼핑을 하고 거실에서 안방 조명을 원격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그 안에 일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하고 이리저리 걸어다니기도 해야 한다. 신기술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습관까지 단숨에 바꿔놓을 수는 없다. 디지털 환상은 이제 식상하다.
'PMP가 MP3 플레이어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현재 상황에서만 놓고 판단하자면 요원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