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입에서는 게거품이 나올 정도로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전날 음주 때문에 밤새 토하다가 기진맥진해서 오전부터 시작한 강의였지만 정말 열심히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소셜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온 질문 하나.
A: 댓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B: 네? 댓글이요? 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인지요?
A: 아니 연예인들이 댓글 때문에 자살하고 그러잖아요.
순간 좀 짜증이 났다. 이런 식의 질문이야 한 두번 받은 것도 아니고 그동안 수차례의 토론도 있었고 복잡한 자유와 방종을 구분짓는 기준에 대해서도 지겹게 늘어놓기도 했다.
B: 자살한 사람이 그러던가요? 댓글 때문에 죽었다고?
A: 아니 그런건 아닌데... 그래도 댓글을 보면 마음에 상처를 입잖아요. 그러다보면 자살도 하게 되고.
B: 자살은 복잡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모든 이의 인생을 일반화시킬 수도 없죠. 자살 원인이 댓글이라고 쓰고 자살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죽음의 원인이 댓글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자살한 사람이 진짜 댓글 때문이라고 한 사람이 몇이나 있나요?
A: 그래도 연예인들이 죽고 그러잖아요. 악플 때문에...
B: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물론 댓글 때문에 상처 입은 내용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돈 벌어오라고 상처준 부모들 때문이고 요즘 왜 아무 일도 안 하냐고 안부를 묻는 얄미운 주변 사람 때문이고 결국 그를 힘들게 한 우리 사회 때문은 아닌가요? 악플이 전적인 이유가 되는 사연을 들어는 보셨나요?
그의 머릿 속에는 그냥 그렇게 자살한 사람은 악플 때문에 죽은 것이고 악플은 죽음을 몰고올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속내였다.
A: 뭐 자살의 이유는 아니라도 악플은 나쁜 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데 실명제를 해서 이들을 잡아내야 하지 않나요?
B: 이미 실명제 하고 있고 거의 95%의 인터넷 댓글이 실명제 하에서 작성되고 있어요.
A: 아니, 아이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누구인지 조사할 수 있게 해야...
B: 실제로 실명을 확인을 위한 조사 자료를 포털에 요구하면 다 줍니다.
A: 아니, 그렇게 다 모으면 자료가 많겠지만 악플이 많을 경우에는 모든 사람을 걸고 넘어지기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을 일단 잡아들여야...
B: 누구 기준으로 누구를 왜 잡아들이나요? 본인은 본적도 없는 댓글을 작성한 사람까지 잡아들이나요? 아니면 대범하게 넘기고 있는 사람에게 '기분 나빴지?'하고 미리 잡아들여서 그 사람 앞에 대령해야 하나요?
서로 무언의 기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공격하고 싶었나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젊은이가 뭔가를 가르친답시고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것이 싫었나보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B: 악성댓글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악성댓글을 대범하게 넘기는 연예인도 많아요. 악플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나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A: 아니, 뭐... 악플 때문에 문제가 많으니까... 사실은 좀 지겨워서 물어봤어요.
B: 네? 지겹다니요? 제 강의가 지겨우셨다는 건가요?
A: 네.
B: ^^ 하핫.. 그렇군요. 제게 실시간 악플을 달고 계시네요. ㅎㅎ
A: ㅎㅎ
이건 서로 쓴웃음이었다. 뭐하자는 건지. 첫시간에 열심히 졸다가 두번째 시간에는 굳이 열변을 토하는 사람 말을 가로막더니 자기 이야기만 죽 늘어놓고, 결국에는 강연자에게 '지겹다'고 직격탄을 날리는 예의는 무엇일까?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다 싶다. 졸려면 계속 조시던가.
하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남긴다. 에효. 정말 많은 분들이 경청해주는 상황 속에서 이런 분 한 분 때문에 기분도 많이 상하고 강의의 맥도 끊겨 버리고 말았다. 한 두번 당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분들에게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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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제 강의는 그에게 그렇게 지겨운 시간이었을까요? 흑흑..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