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 전이다.

어줍잖게 '예언'이란 것을 했다.

원래는 이 글이 발단이 됐다.

2007/01/02 그만의 2007 블로고스피어 5대 사건 예언

이 글을 본 미디어다음 관계자가 블로거기자단 시상식에 나를 초청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로 강연을 해달라고.

그래서 예언서 비슷한 웃기는 짬뽕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고 이를 이야기하고 공개했다. 당시 블로거들의 반응은 절반은 흥미롭다는, 또 다른 절반은 다 아는 이야기라는 식이었다.

이 예언서에 대한 일부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PPT 전체를 공개한 포스트도 있다.

2007/04/16 코끼리 똥 주으러 다니는 블로거

그런데 이 당시 PPT를 만들면서, 그리고 원래 예상을 하면서 우려가 되면서도 은근히 바라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은 새롭진 않지만 새롭게 규정되는 미디어의 한 부류(굳이 이야기하자면 블로그, 온라인 토론이나 의견개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형태)가 기존 우리의 인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 질서와 어떻게 충돌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결론은 너무나 뻔했다. 영향력이 없으면 '찌질이'가 되어버리는 것이고 영향력을 확보하는 순간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자' 또는 새로운 '영향력자'가 되는 상황이다. 이 두가지 모두 기존 질서에 편입돼 있는 이들에게는 공격의 대상일뿐이다.

문제는 이런 공격의 세기가 어느 정도일 것이냐다. 기존의 질서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신화는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는 이들에게도 심연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오래된 이들이 그들의 오래된 종이로 심판하리라는 예상은 대선과 총선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선거법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제약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규제법인데 이 규제법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고 제아무리 자유로운 '개인 영역'이라는 블로그 영역에서 조차 선거법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잔인하게 말하면 조금은 실망했다. 제대로 화끈한 심판도 없었고 그 심판이 들불처럼 번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약한 제재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뭔가 강력한 계기가 빈번하게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미네르바의 등장, 미디어 2.0식 파괴력을 보여준 사례
그러던 중 이미 존재했던 미네르바의 '등장'이 있었다. 아고라에서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퍼다 나르며 주목했으며 처음에는 놀라운 결과론적인 적중률을 가진 예언서 처럼 쓰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도우미가 있었기에 존재했다.

미네르바와 상반되는 그 존재, 즉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과 경제 수장을 맡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큰 실수가 있었다. 물론 전세계 금융 위기라는 상황 자체가 사람들을 민감하게 만들면서 이 둘의 대비는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됐다.

문제는 미네르바라는 아이템이 많은 메신저(언론사, 증권사, 심지어 블로거와 일반 네티즌까지)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됐다는 것이다. 늘 말해왔듯이 주목은 '영향력'의 다른 말이다. 따라서 미네르바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향력자' 범주에 편입이 돼 있었던 것이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리를 바꾸고 소비자가 생산자를 평가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미디어 2.0식의 현상이었다.

알려지지 않고 캐릭터도 제대로 소비자에게 각인이 되지 않는 일반적인 네티즌의 발언과 미네르바의 발언 영향력을 수평 비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인들이 그만에게 '요즘은 좀 약해', 또는 '요즘 몸을 사리네'라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응수해왔다. "10명이 내 이야기를 들을 때와 1000명이 내 이야기를 들을 때는 당연히 메시지 방식이나 수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인 블로깅은 정말 소수만 볼 수 있도록 따로 마련해 두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알게 모르게 체득한 기성 미디어적인 습성에 기인하는 반응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100명이 읽던 글과 1만명이 읽던 글에서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어찌됐든 그리하여 '영향력자' 미네르바의 '실수'를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이 '실수'가 주목되는 기존의 여론 형성 과정에 편입돼 있었으며 가뜩이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인터넷은 이 '실수'또는 '의도한 실수'를 여과없이 퍼나르게 되었다.

그동안 네티즌들이 정책 당국자의 말 한마디씩을 잘라내어 꼬투리를 잡듯이 반대로 정책 당국자, 또는 규제 당국자에 미네르바의 '오버'는 꼬투리를 제공했다. 미네르바의 '실수' 또는 '실정법 위반'은 권력자들의 역공에 제대로 걸린 셈이다. 네티즌들의 실질적인 '수단'이 '입'과 '키보드', '마우스' 정도였다면 '법'이라는 수단을 가진 권력자들은 이 수단을 활용하여 상대적인 '영향력자'에게 충분한 역공을 취할 수 있었다.

내가 미네르바에 그동안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쉽게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이런 정황들을 살펴보면서 여론의 동향과 제도권 미디어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얽히는 동안 뭔가 가치 있는 의미를 끌어내고 싶다는 못된 습관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사태가 던져준 미디어 2.0 시대의 의미
지나치게 미디어 관점으로만 시대를 풀어내는 그만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100명의 구독자일 때는 1, 20명이었겠지만 1000명이 넘어서면 같은 비율이라도 100명, 200명이란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그만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10명 중 그만을 위험에 빠트릴 제도권 실력자가 1명 정도에 불과했다면 그 수가 10명으로 늘은 상황에 지나치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2.0의 함정이다. 솔직함과 주관적인 것이 미덕인 미디어 2.0이 미디어 1.0 정도의 규모에 근접하면서 생기는 희한한 '희석' 현상인 것이다. 놀이로 시작한 비보이 댄스를 직업으로 갖게 됐을 때 비보이들이 갖는 심적 부담감 같은 것이랄까.

미네르바 사태는 앞으로 몇 번의 고비가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미디어 2.0식 사고에 빠져 있는 내게 새로운 희망과 좌절을 선사했다.

1. 거대해지는 순간 단기적인 패배를 경험하는 신생 미디어
라디오가 드라마나 음악만 틀어주다가 뉴스 서비스를 했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있겠다. 라디오는 당시 신생 미디어였으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낄낄 거리는' 미디어였다.

그러다 라디오는 그 기술적 진보와 제작의 정규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산업군을 형성하고 정책 당국자들의 후원을 받는다. 종이보다 전파력이 뛰어난 '홍보 매체'가 하나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문과 미국 정부는 초기에 뉴미디어에 환호했다. 그리고 전쟁과 각종 정책 홍보의 도구로 사용되던 시기를 지나면서 라디오가 '뉴스'를 송출하기 시작한다.

'뉴스'를 송출하는 순간 사람은 '욕심'내지 '사명감'이 발동하게 된다.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신문사와 통신사였다. 어설프게 뉴스를 시작하는 라디오가 제대로 뉴스 매체가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고 여차 하면 맹폭을 퍼부으면서 기성 미디어의 영역을 넘보지 못하도록 견제할 수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문사는 라디오에서 뉴스를 빼낸다.

신문사와 통신사가 주던 원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읽던 아나운서 하나로 족했던 라디오는 공격적으로 '기자'를 뽑고 동원 가능한 방식 '라디오 해설', '라디오 토론', '라디오 대담' 식의 프로그램을 만들며 라디오의 전파력을 영향력으로 변화시켜나간다. 어설펐고 어색했다. 실수와 엉망진창 사고도 많이 쳤다. '화성 외계인 침공' 라디오 뉴스 사례는 라디오의 신뢰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신문은 뉴미디어의 견제에 작은 실패를 맛본다.

하지만 이후 라디오는 그 존재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었고 스스로 새로운 미디어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TV의 등장이었다. 역시 '엔터테인먼트' 매체로 출발한 TV 역시 '영상 저널리즘' 또는 'PD 저널리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신문을 위협했고 그 전파력을 통해 확고한 영향력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아마 지금은 생뚱맞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문은 지난 수십년 동안 TV를 비평해왔지만 TV가 신문을 비평하기 시작한 시기는 불과 20년도 안 됐다. 1991년 4월에 MBC TV에서 '미디어 비평'이란 것을 처음 시작했으니 말이다. 당시만 해도 '감히 방송이 신문을?'이라는 투의 신문 관계자의 발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당시 조선일보 진성호 기자의 글을 한 블로거가 펌한 링크를 달아둔다.(원문을 찾으면 다시 링크하겠음.)

뉴미디어는 늘 그렇게 '의도적인 배제'를 당해왔고 '단기적인 패배'를 거쳐 '상대적인 승리'를 얻어냈다.

내가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10여년 전만해도 교수와 학생들이 토론 때마다 '역시 흘러지나가버리고 역사성이 배제되는 방송보다는 활자로 남아서 살아있는 역사가 되는 종이 기자가 제대로 된 기자'라는 따위의 말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ISDN이니 PC통신이니를 추켜세우며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에 환호했다. 전자적 통신 방법이 비로소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 편입돼 있는 사람들의 선입견에 의해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왔다.

인터넷이 지금 '단기적 패배와 좌절'을 맛보는 시기다. 곧 시련의 시기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난 글에서 플랫폼의 정교화와 좀더 쌍방향성의 강화, 네트워크 범위 확대가 요구되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2. 규모의 영향력 시장을 만들어 폭발성을 지닌 미디어에 편입되다
미네르바의 탄식 "난 블로거일 뿐이고"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고초를 겪고 있는 미네르바가 탄식으로 한 소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 말의 의미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심어주었다.

마치 포털이 "우리는 유통 플랫폼일 뿐이고"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역할 범주를 정했지만 자신의 영향력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 것인지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집중적인 견제에 당황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블로그'라고 하면 찌질하다거나 '패배주의'에 젖은 블로거들의 자조섞인 목소리 '우리의 힘이 이 정도에 불과하지 머', '우리끼리 이러다 말지'라는 소리가 쏙 들어가게 한 것이다.

일찍이 그만이 블로그에 편입되면서 '미디어의 가능성'을 설파하면서 들었던 주위의 조소, 또는 의구심, 불안감들을 피부로 느꼈다. 이런 의구심을 새로운 확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뛰어다녔다. 아마 이제는 '미네르바' 이야기 하나로 전 국민에게 '블로그도 강력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라는 가능성을 설파하고 다녀도 비웃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주위의 블로거 가운데 올해 2, 3억 버는 블로거가 등장할 것이란 전망을 들은 것보다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블로거 미네르바'의 파괴력을 보고 느끼는 것이 '블로그'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는 미네르바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블로그, 또는 1인 미디어, 또는 전자적 네트워크를 통한 의견 전파와 파괴력, 또는 영향력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단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는 기사가 읽히지 않고 회자도 안 되는 상황에, 자신들끼리 만들어 낸 [특종상]을 주고받고 있는 기성 미디어 종사자들의 탄식이 이제는 이해가 될 것이라고 본다. 물론 아직까지 공고한 그들의 리그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3. 미디어 2.0 시대의 개막은 지금부터다
<미디어 2.0 :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라는 책을 내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은 '인간'이었고 '기술'이었다. 미디어는 처음부터 활자라는 인쇄 기술로부터 탄생했다고 봤을 때 미디어가 기술에 종속되어가는 과정과 기술을 활용해 인간들이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해가는 과정이 뒤섞인 것이 미디어 진화의 과정이었다.

한 때 저자들이 깊이가 낮고 비주얼만 강조한 잡지를 하대하고 짧은 글을 급하게 써대는 신문을 잡지가 무시했으며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는 말만 많은 방송을 신문이 업신여겼다. 전파 매체는 다채널 케이블 매체를 천대했다. 그리고 인터넷 매체는 오프라인 매체로부터 사생아 취급을 받았으며 글을 생산하는 매체들은 유통만 담당하던 포털을 우습게 봤다. 조직 미디어는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찌찔한 글 뭉텅이라고 블로그를 무시했다.

이게 미디어 변천사 속에 존재하는 '의도적 배제'의 전형적 패턴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두 가지 의미있는 변화에 의해 뒤바뀌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나는 산업규모이며 또 하나는 영향력이다. 굳이 이들 매체 규모와 영향력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구 매체들이 죽지는 않으나 힘들어하고 신매체는 구매체들의 소비자 장악력의 일부를 불하받으면서 커가는 모습은 쉽게 상상 가능하다.

기술적 진보에 의존하는 미디어 진화가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순간이 도래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미 이 상황이 당장 올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누구나 손쉽게 뉴미디어의 '의미'를 수긍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의 이동을 예견하면서도 체감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늘 필요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눈에 보여야 믿으니까.

미네르바 사태는 미디어 2.0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 미네르바 개인이 쓴 글 하나로 인해 TV토론과 포털 자체 토론 방송이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진중권vs변희재 끝장토론 다시보기[야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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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9/01/17 01:16 2009/01/1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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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네르바 구속은 개인화시대 도래에 대한 저항이다

    Tracked from I Love Contents & 블로그문화연구소  삭제

    황의홍 사법부 너 마저도 미네르바 구속을 보면서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 너 마저도!“ 라는 탄식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법은 사회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범이다. 법적용은 법적용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지탱할 수 없거나 개인의 권리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없을 때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옳다. 최종 판결 전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하여 불구속 수사를 점차 확대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네르바 구속은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세계적인 망신” 이..

    2009/01/19 08:38
  2. 블로그도 사회적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Tracked from 깜냥이의 웹2.0 이야기!  삭제

    우리 사회에서 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에 따르는 사회적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일반 블로거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글을 자유롭게 포스팅하고 있을 뿐인데 왜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깜냥닷컴은 필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자유롭게 작성하는 개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은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일 수 있지만 그 글이 발행되는 순간 누군가에..

    2009/01/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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