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마케팅 보조금 행위가 결국 '리베이트'라는 결론이 났군요.
향후 인텔의 반응이 있겠지만 이번 조사가 꽤 오랜 기간 동안 조사돼왔고 단순히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인텔코리아로서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공정위 조사에 대한 원문 발표 자료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텔사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해 시정조치[공정위]
여기서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공정위 발표 자료를 일부 인용합니다.
구체적으로 인텔사는 어떤 행위를 했을까? 인텔사는 CPU 시장에서의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경쟁사업자인 AMD를 배제하기 위해 국내 PC 시장의 1, 2위 사업자인 삼성전자, 삼보컴퓨터에게 AMD사가 제조한 CPU를 구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각종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삼성전자에게는 2002년 5월에 삼성전자에게 AMD 제조 CPU 구매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삼성전자는 실제로 2002년 4/4분기부터 AMD CPU 구매를 중단하고, 그 이후 2005년 2/4분기까지 인텔사 CPU만 구매하는 조건으로 각종 리베이트를 수령했다.
인텔사는 2003년 3/4분기부터 2004년 2/4분기까지 국내 PC 2위 회사였던 삼보컴퓨터에게도 홈쇼핑 채널에서 AMD CPU를 인텔사 CPU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약 260만달러)를 제공했다. 2003년부터 홈쇼핑 채널에서 AMD CPU 탑재 PC가 호조를 보이자 해당 홈쇼핑 채널에서 영향력이 큰 삼보컴퓨터를 대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이다.
인텔사는 또 2004년 4/4분기부터 2005년 2/4분기까지는 삼보컴퓨터에게 국내 판매 PC에 대한 MSS 70% 유지를 조건으로 리베이트(약 380만 달러)를 제공했다. 2003년 9월에는 시장지배력 및 리베이트를 이용해 삼보컴퓨터가 AMD의 데스크탑용 64비트 CPU의 국내 출시를 방해하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공정위는 인텔사가 제공한 리베이트는 경쟁사업자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급된 것으로 국내 PC 제조회사들의 거래상대방 선택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경제분석 결과 AMD가 인텔사의 리베이트를 감안해 가격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PC제조회사들에게 자신의 CPU를 무료로 공급해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미 공정위에서는 지난 2006년 초 대대적인 인텔코리아 압수수색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AMD의 즉각적인 환영 성명 발표는 IT 업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죠.
▶AMD, 인텔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인텔코리아 압수수색에 대한 공식 입장 발표[AMD] 2006/02/10
AMD는 그동안 인텔의 불공정한 행위로 여겨지는 마케팅 보조금 지급 정책에 대해 비난하면서 각국 법원과 공정위에 제소하거나 소송을 거는 방법으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이슈화를 꾸준히 펼쳐왔습니다.
이미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 등지에서 인텔의 전반적인 독점금지법 위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거나 법원에서 법적 공방중인 상황입니다.
일단 한국에서 좀더 발빠른 결정이 나왔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도 매우 주목하고 있는데요. 뉴욕타임즈에서는 이와 관련한 매우 심층적인 기사가 최근 실리기도 했습니다.
▶In Turnabout, Antitrust Unit Looks at Intel[NYTimes.com] 2008/06/07
불공정행위의 기본은 '경쟁자 배제'
보통 시장이 독과점으로 흐를 때 이것을 불공정행위에 의한 결과로 볼 것인지, 또는 시장의 자연스런 선택으로 볼 것인지는 매우 논리상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인텔은 이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이 시장의 선택이 분명함에도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과도한 마케팅 정책을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앞의 공정위 조사에서 나오듯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을 거래 관계에 끼워 넣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의제기가 제대로 통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프로그램은 그동안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손꼽힙니다. 자사 브랜드를 관련 제품 광고 속에 삽입하는 조건으로 광고 마케팅 비용 일부를 보조해주는 것이어서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전반적으로는 인텔 브랜드 인지도가 함께 상승할 수 있도록 해줬죠.
하지만 마케팅 보조 행위에서 위험한 거래가 끼여들었고 이에 PC 제조사들이 눈앞의 이익에 그대로 이행했다는 점은 우리나라 거래 관행의 일면을 보는 듯 합니다.
삼성전자와 TG삼보컴퓨터가 거론되면서 심히 기분 나빠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은밀한 거래 느낌이 나는 '리베이트'라는 단어에 발끈하던데요. 좀 우습군요. 불공정한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얻은 이익이니 리베이트라는 말은 적절해보입니다. 결국 불공정 행위를 당장의 자사 이익만 따지고 시장의 공정한 거래 질서에 대한 생각을 도외시한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수긍이 가지 않는군요.
대세론이 독점을 키운다
이른 바 '대세론'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업 거래에서도 꽤 심각한 공정거래 질서 훼손 행위가 자행되고 있죠.
예를 들어 A의 제품이 40%로 1등이면 모든 주변 거래선이 1등에게 쏠리면서 묻어가려는 심리들이 보이는 것이죠. 이렇게 몰려다니기식의 거래 관행은 불공정한 행위를 '시장의 선택'이었다는 방어 논리로 포장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자 배제 행위에 가담한 기업들 역시 피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다른 경쟁자가 없이 인텔 하나만 PC에 들어가는 CPU와 기타 프로세서를 독점으로 공급한다고 했을 때 과연 인텔이 지금처럼 마케팅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물론 잘 만든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해서 지금의 점유율이 있었겠죠. 하지만 결과가 그 과정의 모든 것을 방어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남들 위에 군림하고 나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방어 논리가 갖춰지는 현실이 매우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