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복제 시대,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물인가.이 원초적인 질문은 이미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었던 1990년대부터 있었다. PC가 보급되면서 워드프로세스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고 포토샵만 잘 다루면 원본으로부터 새로운 원본을 뽑아낼 수 있었다. 새로운 디지털 짝퉁 창작의 세상이 되었다. 음악도 디지털화되면서 표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첨단 산업으로 불리는 모바일 창업 시장에도 베끼기 열풍이 ‘벤치마킹’이란 근사한 이름으로 성행하고 있다. 불과 출시 6일만에 돌풍을 일으키며 모바일 게임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썬데이토즈의 신작 게임 ‘애니팡2’가 구설수에 올랐다.
카카오톡 게임하기라는 같은 플랫폼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킹닷컴의 ‘캔디크러시 사가’라는 게임과 유사하다 못해 대부분의 게임성과 게임 진행 방식을 그대로 베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이 이런 비난을 받으며 모바일 게임 시장에 등장한 ‘애니팡2’의 돌풍의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길래… ‘라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방적인 ‘표절 논란’의 주인공으로 지적받으면서도 “법적 검토를 마쳤으며 문제가 없다”는 당당한 입장 표명에 한 차례 더 주목받았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었을까. 출시 며칠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매출순위에 상위권에 안착하였다. 덩달아 주가도 표절 논란으로 주춤하다가 결과론적으로 ‘매출 상승 기대감’을 반영하며 반등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썬데이토즈가 이렇게 게이머들과 업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애니팡 첫번째 버전부터 다이아몬드 대시라는 모바일 게임과 유사하다는 표절 논란에 이은 후속작도 마찬가지로 ‘창의성 부족’을 드러내며 ‘노골적인 벤치마킹’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애니팡 처음 버전과 신작 애니팡2의 연관성은 캐릭터 정도만 물려받았을 뿐 게임성은 서로 다른 게임 진행 방식이어서 더욱 논란을 키웠다.
작년 말, 2013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은상을 수상한 포스터가 불과 몇 달 전 유엔여성에서 제작한 양성평등 캠페인 광고 시리즈의 사진과 유사하다며 네티즌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상태에서 입에 검색 창이 놓여진 모습이어서 한눈에 봐도 유사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대로 수상작으로 결정되었고 주최측은 표절논란으로 수상작이 바뀐 적이 없다는 말로 논란이 잦아들기만 기다렸다. 이쯤되면 우리는 표절에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야후가 포털 서비스를 시작하고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자 뒤따라 나온 한국의 포털 서비스들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후 야후가 3단으로 바뀌면 3단으로, 야후의 뉴스가 오른쪽이면 네이버는 왼쪽으로 뉴스를 배열했다. 검색창 모양이나 화면배치는 서로 유사해져만 갔다. 애플의 곡면 사각형 모양의 스마트폰 모양은 그대로 삼성의 스마트폰 디자인으로 ‘벤치마킹’됐다.
2000년에 네티즌끼리 묻고 답하는 서비스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자 한국에 유사한 서비스가 생겼다. 한겨레신문에서 운영한 디비딕이란 서비스였다. 사용자가 폭증했지만 수익모델이 변변치 않아서 일부 유료화를 단행했다. 그 즈음 2002년 네이버가 지식iN 서비스를 시작한다. 유료화에 대한 반발로 빠져나간 네티즌은 짝퉁 서비스인 지식iN 서비스로 옮겨가고 아예 처음부터 묻고 답하기 서비스를 원했던 사용자들은 지식iN 서비스가 원조인줄만 알고 사용했다.
해외에서 ‘핫메일’이 무료 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던 시절 한국에서는 이름도 비슷한 ‘한메일’이 나왔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음 카페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네이버 카페 서비스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시장에서 승리했다.
게임 서비스들은 원조 히트작들을 교묘하게 베끼고 모방하고 본받았다. 봄버맨을 그대로 베낀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엔비, 마리오카트의 게임 방식 그대로였지만 국민 게임 반열에 올랐던 카트라이더, 건바운드나 웜즈시리즈와 유사했던 턴제 방식의 포트리스2 블루는 두고두고 화제의 베끼기 흑역사의 주인공들이다.
모바일 서비스가 대세인 요즘 우리의 모방의 흑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무려 2년 전 게임이었던 소니의 모두의 스트레스팍 레이싱의 게임 방식을 그대로 본딴 다함께 차차차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왓츠앱의 특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은 카카오톡과 라인은 글로벌 메신저로 순항중이다.
얼마 전 커피러버라는 중국산 모바일 게임이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파티게임즈의 아이러브커피의 코드까지 해킹해 만든 복사판이 등장하면서 네티즌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우리도 우리가 행한 벤치마킹 수법 그대로 당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불법과 합법을 떠나서 가슴에 손을 얹어 떳떳한 창작자들이 우대받는 세상이 분명 더 나은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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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설합병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