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속에는 X파일이 세 개쯤 있죠.
멀더가 등장하는 X파일,
연예인의 치부를 낱낱이 카더라에 의존해 정리해 놓은 연예인 X파일
그리고 삼성 X파일
오늘 삼성 X파일 사건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이상호 기자 무죄, 그리고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 선고유예..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상호 기자의 무죄 소식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보도를 했던 김연광 편집장은 선고유예(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에 대해) 결정이 났는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굳이 알릴 필요도 없고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모두 가감없이 노출시켰다는 것이 선고유예의 결정이죠. 사실상 무죄이나 의미상 유죄이며 실질적으로는 자유인으로 풀어주겠으나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기자.. 다시 생각해보죠. 미디어오늘과 연합뉴스, 그리고 다수의 인터넷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내는 과정에 조선일보의 기사 하나가 눈에 띄였고.. 그중 일부가 다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의 법정 최후진술 조선일보 [사회] 2006.08.11 오후 14:08
(앞으로 제가 할 이야기에 대해 괜히 오독하지 말고 내용 충실히 보신 다음 말씀하세요..)
그중 일부를 발췌하면(이렇게 잘라먹기 식 안 좋다는 거 알지만..)
...강력반 한 구석에서 기사를 써서 회사에서 내근하는 선배에게 전화로 불러 주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강력반에 앉아 있는데, 『회사 부장이 찾으신다』며 전화를 바꿔 줬습니다. 수고했다는 말씀을 기대했으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그래 가정주부 20명을 구속시켜서 그 집안 파탄나는 꼴을 보고 싶냐. 그 아주머니들이 감옥 간다고 이 나라에, 이 사회에 무슨 보탬이 되냐. 강력반장 그 녀석도 너랑 똑같은 놈이야. 반드시 내 얘기 강력반장한테 전해라』
부하직원들과 구속영장을 만드느라 정신없는 강력반장에게 사회부장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강력반장은 경찰대학을 나온 제 또래였습니다. 그는 제 얘기를 듣고서 아주머니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이유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가정의 행복을 깨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경찰기자 생활을 통해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 죽였다」, 「의붓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했다」 같은 悖倫(패륜)기사들을 스스로 걸러 내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김연광 편집장은 기자 윤리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고 말하지만 전 좀 다르군요.
조선일보 사회부장(님)이 이 사회 즉결 심판관이셨구나.... 제아무리 설득된다 하더라도 실정법상 범죄자들을 수사하고 검거하는 과정에서 일개 신문사 부장이 일선 기자를 통해 전한 말 만으로 그 범죄자들은 자유의 몸이 됐군요..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또 범죄를 저지르다가도 당장 그 사회부장님께 읍소하면 면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번뜩 드는 것은 제 비뚤어진 맘 때문일까요?
물론 이 최후진술에서 뭐를 어떻게 해석해서 언론자유와 권력과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저도 이 글에서 놀라운 사실(인정하기 싫은)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언론이 제 4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처절한 현실을 말이죠.. 이 기자를 대동하지 않아서 걸려든 아줌마들은 지금 전과자가 돼 있고 가정이 파탄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기자들을 비난하고 싶다거나 언론권력을 비판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상당히 피상적일 때가 많지만 이런 사례 자체가 평범한 시민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이런 와중에 이런 기사도 발견했습니다.. 언론을 비판하시고 기자들을 욕하고 싶으신 분들도 그들의 생활 속에서 겪는 고초쯤은 대략 이해하시면서 감시해주길 빌며..
"특집기사 쓰다 지쳐 떠난다" 미디어오늘 [사회, 전문지] 200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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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겪었던 주변에서 목격했던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오래 전 '빨간 마후라' 사건 기억하시나요?
경찰이 음란물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테입을 하나 발견하죠. 중학생애들이 포르노를 찍은 사건.
이것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사회적인 충격과 함께 이들과 그들 부모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죠. 약 한 달 정도의 엠바고(보도유예)가 걸립니다. 당시로서는 연예인 X파일에 비견되는 센세이션한 사건이었으니까요. 현실이야 어쨌든 말이죠.
그러다 경찰청 기자실에 있던 기자 한 분이 이 사건을 결국 '단독' 보도하게 되고 물먹은 곳은 연이어 따라 보도하게 되는 악순환을 거쳤죠.
남은 거요? 그 기자는 당분간 기자실 출입을 정지먹었죠(기자실 기자들끼리 정한 규율에 따라).
따라 쓴 기자들이요? 그 단독 기사를 내보낸 사람들만 욕하며 사회적 충격을 주는 기사를 쓰더군요... 씁쓸했던 '알권리와 기자 윤리'에 대한 사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