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죠.

게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돼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게임의 역기능, 즉 ‘게임이 현실의 폭력성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부정적인 시선에 집중했던 게 사실이죠. 이러한 분위기는 게임 문화가 동네 오락실에서 출발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한데요. 급기야 청소년들이 심야에 게임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게임 셧다운 제도‘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단순히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대신 게임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국 Palo Alto에 있는 Institute for the Future(미래를 위한 연구소)Jane Mcgonigal 박사는 지난해 TED에서 "Gaming can make a better world(게임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수 있다)"라는 다소 급진적인 제목의 발표를 해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Jane Mcgonigal의 TED 강연(한글 자막 있슴다. 봉사자 여러분께 감사를.)

이 강연에서 Jane은 ‘전 세계 인구가 일주일에 30억 시간을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데 소비한다’는 통계를 들면서 "어떤 이들은 현실의 긴급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도 아까운데 너무 많은 시간을 게임에 소진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연구를 진행한 결과 나는 이 시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일주일에 210억 시간까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청중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죠. 이런 웃음은 강연 내내 종종 나오는데요. Jane은 끝까지 진지하게 얘기를 이어나갑니다.

Jane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에서 수많은 게이머들이 가상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지략을 발휘하고, 남들과 협력합니다. 게이머들은 그 과정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마인드로 놀라운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데요. 이를 현실 세계로 이어올 수만 있다면 공익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느냐는게 기본 생각입니다.

문제는 상당수 게이머들이 자신들은 가상 공간에서는 뛰어나지만 현실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인데요. Jane은 게임이나 서비스의 디자인을 잘 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Jane이 참여하는 Institute for the Future에서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을 최근 몇 년간 만들고 있습니다. Jane의 TED 발표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하이컨셉님께서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해주신 글 "게임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Jane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외국에는 많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보죠. Carnegie Mellon 대학교의 Luis Von Ahn 교수는 이를 "Games With A Purpose(목적을 가진 게임)"라 부르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ESP Game의 경우 온라인으로 연결된 서로 모르는 두 사람에게 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각자가 느끼는 키워드를 입력해서 결과가 일치하면 점수가 올라가고 해당 키워드는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태그로 등록이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컴퓨터라도 이미지를 알아보는 능력은 부족합니다. 특히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해당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느낌은 컴퓨터가 절대 파악하지 못 하죠. ESP Game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에 대한 키워드를 입력함으로써 이미지 검색의 품질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게임은 구글이 사들여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Luis가 Games With A Purpose를 간단히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Carnegie Mellon 대학의 Luis Von Ahn 교수. 이제 32살밖에 안 됐네요. ㅎㅎ

여담이지만 이 양반, 사실 천재입니다. 웹사이트 가입할 때 이상하게 찌그러진 글자를 보고 어떤 글자인지 입력해야 절차를 진행할 수 있죠? 그 CAPTCHA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거든요. CAPTCHA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작업을 하게 만들 수 있음을 파악한 Luis는 이를 어떻게 하면 공익적인 성과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Human Computation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죠. ESP Game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는데 Game을 매개체로 사용한 것으로, Human Computation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CAPTCHA 역시 수많은 대중의 힘을 빌어, 컴퓨터가 인식하기 힘든 고문서의 글자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reCAPTCHA로 발전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게임 자체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는 방향이 하나의 조류라면, 최근에는 게임에 활용하는 요소들을 게임 외적인 분야에 적용하자는 이른바 Gamification에 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Gamification은 “game(게임)에 “-fication(-化하기)”을 덧붙인 신조어인데요. 포인트/레벨/순위표/퀘스트 등 게임에 재미와 몰입성을 더하는 게임 디자인 기법(game mechanics)을 쇼핑/교육/의료/미디어 등 게임 이외의 분야에 적용해보자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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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ification 전문가인 Gabe Zichermann의 슬라이드에서 슬쩍했습니다.
.

게임의 특성이자 최대 목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오래 즐기도록 하는 것이죠. 이러한 게임의 핵심적인 디자인 목표를 다른 분야에도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거나 학생의 학습 능력을 키우는 등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gamification 논의의 큰 줄기입니다. 게임 기획자들은 수십년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연구해온 만큼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의 전문성을 갖췄을 겁니다.

사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게임적인 요소는 알게 모르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항공사의 마일리지 프로그램이나 쇼핑 업계의 사은품 당첨 이벤트 같은 마케팅 활동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시도들이 일회성으로 체계 없이 진행됐던 것도 사실인데요. gamification은 이러한 시도를 체계화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게임화 방법론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입니다.

나이키가 2008년 애플과 함께 선보인 “Nike+”는 대표적인 gamification 도입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센서가 장착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하면 거리, 페이스, 소모 칼로리 등이 계산돼 아이팟으로 전송되죠. 아이팟은 이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면서 운동량을 조절해주고, 이용자가 설정한 목표치에 도달하면 축하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요. 또 운동 데이터를 온라인에 올려서 성과를 나누거나 서로 경쟁하는 등 마치 게임을 하듯 운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나이키가 25개 도시에서 동시에 10km 단축 마라톤을 진행하자 80만명 이상의 Nike+ 이용자들이 동시에 참여했을 정도로 이 프로그램은 나이키의 팬층을 결집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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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ucks가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Foursquare와 함께 진행한 마케팅도 눈여겨볼 만 한데요. 이용자들은 “5개의 서로 다른 Starbucks에 체크인하라”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면 Foursquare에서 가상의 트로피나 배지를 받고 커피도 할인 받을 수 있습니다. 의류 브랜드인 Gap 역시 Foursquare 이용 고객들에게 하루 동안 제품 가격을 25% 할인해주는 BlackMagic Event 행사를 진행했죠. 이미 가상의 배지와 트로피 보상 시스템만으로 400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 모은 Foursquare가 현실과 만나면서 더욱 강력하게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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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gamification 논의에서 금전적인 형태의 보상 체계는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전적 보상은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금전적 보상이 사라지면 관심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gamification에서는 당장의 보상보다는 고객(혹은 직원, 환자, 학생 등 모든 대상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을 최대 목표로 상정합니다. 이를 위해 레벨업이나 성취감 부여 등 게임에서 활용하는 기법들을 끌어들이고 있죠.

Gamification에 대한 감을 좀 더 잡으시려면 "Game-Based Marketing"의 저자인 Gabe Zichermann이 지난해 10월 구글에서 강연한 "Fun is the Future: Mastering Gamification" 동영상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되는 분량이라 좀 길기는 한데요. 시간 날 때 차분히 한 번 꼭 들여다보시면 좋겠네요. 설명을 쉽고 재미있게 잘 하는 아저씨입니다.

첫 번째 글이다 보니 조금 길어지는 것 같아 이만 줄여볼까 하는데요. 아직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gamification이 하나의 트렌드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경제지인 포춘(Fortune)은 2010년 9월 “Play to win: The game-based econom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업들은 gamification이 사업을 전개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고 있다”고 보도했죠. 또 "Game-Based Marketing"의 저자인 Gabe Zichermann은 2010년이 대중들이 gamification과 만나는 시발점이었다면 2011년은 gamification 관련 제품과 서비스, 기업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월 20일과 21일 양일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gamification 만을 주제로 하는  summit이 처음으로 열리는데요. 이는 gamification이 하나의 떠오르는 분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 행사에서는 그동안 진행된 다양한 gamification 사례를 살펴보고, 실제로 이를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워크샵이 진행됩니다.

실은 제가 지금 gamification summit에 참여하려고 미국에 날아와 있습니다. 원래는 summit이 끝난 후에 구체적인 내용을 들고 첫 번째 포스팅을 할까 생각했는데, 한 번에 모든 것을 담으려면 워낙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서(이미 쫌 기네요. ㅎㅎ) 우선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해봤습니다. 제가 앞으로 종종 전해드릴 gamification 관련 내용의 프롤로그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게임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저와 함께 차근차근 살펴보시죠. :)

P.S. 본문 가운데 gamification에 대한 내용은 제가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기고했던 글에서 일부를 가져와서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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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자 10년, 뉴스 생산을 넘어 유통을 고민하겠다며 뛰쳐나온지 1년.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즐겁게는 살고 있음. :)
2011/01/19 13:07 2011/01/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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