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추석 연휴를 여유롭게 보내던 한국인들을 새벽녘부터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게 했다. 애플은 지난 9일(현지 시간) 미국 쿠퍼티노 플린트 센터에서 신제품 발표행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날 애플의 전형적인 발표 스타일이 그대로 보여졌으며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 나올 제품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각 포털의 인기검색어 상위에 ‘애플’과 ‘애플와치’, 그리고 ‘아이폰6’가 오르락내리락 했다. 스티브잡스가 떠난 애플은 여전히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One more thing..’(그리고 하나 더)이라는 말과 함께 스마트시계인 ‘애플 와치(Apple Watch)’를 선보였다.

애플이 이날 선보인 제품은 크게 4.7인치 화면 크기를 가진 아이폰6와 5.5인치로 더 커진 아이폰6 플러스, 그리고 2가지 크기의 애플와치였다. 그리고 애플페이(Apple Pay)라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도 눈길을 끌었다.

아이폰6은 새로운 운영체제와 새로운 A8 64비트 칩을 탑재하면서 하드웨어 성능면에서도 큰 폭으로 향상된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폰6플러스는 아이폰6와 7인치 아이패드 사이의 제품군으로 틈새 없는 라인업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와치의 등장으로 새로운 영역에 대한 본격적인 출전을 예고했다. 당연히 전세계 애플 마니아들은 환호했고 현장에서는 연신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런 환호 뒤에는 수많은 논란과 비판, 그리고 의문 제기가 남게 마련이지만 이 또한 애플의 파급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손에 쏙 쥐는 휴대폰 크기를 고수했던 입장을 슬그머니 바꿔 태블릿과 휴대폰 크기의 중간 모델인 ‘파블렛’ 시장을 노린 5.5인치 아이폰6 플러스는 애플의 경쟁자들과 비판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신비주의를 무색하게 큰화면의 아이폰이 나올 것이란 루머 그대로 나왔다는 것도 실망감을 더했다. 더불어 NFC 방식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은 그동안 NFC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애플의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원형이 아닌 사각형의 두툼한 애플와치에 대한 호불호 논쟁은 패션계까지 번졌다.

시장은 단기적으로 애플에게 주문하고 있는 ‘혁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에 9월 초부터 9일 당일까지 주가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신제품이 발표되고 나서 순식간에 제자리를 회복하기도 했다. 이는 애플이 그동안 잘 해왔던 것을 더 잘할 것이란 확신을 주었다는 뜻이다.

애플은 아이팟을 내놓았을 때 단순히 제품만 내놓은 것이 아니라 음원 판매 서비스 플랫폼인 아이튠즈를 함께 내놓았고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도 멋진 휴대폰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그 위에서 동작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도 내놓았다. 이것은 애플이 단순히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비록 닫혀 보여도 파트너들이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갖춰진 생태계’를 만들어 제시했다는 의미다.

이번에도 애플페이의 경우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경쟁력을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경쟁력이나 디자인적인 우월성을 벗어나 새로운 생활 도구로서 아이폰을 손에서 떼어낼 수 없도록 했고 이런 플랫폼(아직은 미국에 한정돼 있지만)은 수많은 생태계의 협력 위에서 동작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다소 애매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애플와치 역시 생태계를 함께 들고 나왔다. 사용성을 극대화하기보다 웨어러블 기기의 초기 목적성인 ‘헬스’와 ‘시계’ 기능에 충실했으며 추가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더한 정도라는 점에서 이 기기가 품고 싶어하는 생태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제품을 여러 개의 색깔과 포장, 그리고 교체형 시계줄로 디자인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한 선택에서 전세계 22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스마트폰 액세서리 시장에 보내는 러브콜을 읽을 수 있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닫힌 생태계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파트너사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애플의 갖춰진 생태계 디자인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잡스 없는 “완전한 팀쿡 체제”, 애플 안착

항간에서 이번 신제품 발표에서 나온 애플의 이름짓기가 스티브잡스의 그것과 다르다는 면에서 팀쿡 체제로의 완전한 이전을 선언했다고 말한다. 또 누구는 스티브잡스의 ‘괘적한 크기’에 대한 고집을 무시한 7인치 아이패드 미니와 더불어 5.5인치 스마트폰의 등장이 고인의 혁신에 대한 의지를 계승하지 않을 것이란 명백한 의지였다고도 평가한다.

하지만 팀쿡 체제가 짐짓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으로 만든 시장의 파괴적 혁신 처럼 과격해 보이진 않더라도 스티브잡스 때부터 이어져온 성능 향상에 대한 집요함과 시장을 파괴하고 시장을 재편하여 파트너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모습에서 스티브잡스의 유산을 걷어찼다는 표현은 과하다.

애플페이를 소개할 때 이미 시티그룹, JP모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이 협력하기로 했고 수많은 카드사와 제휴를 맺었으며 이들로부터 충분한 수수료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NFC만 탑재하고 시장이 알아서 움직여주길 바라는 ‘방관자’ 구글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움직임이며 이는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파트너를 만들어가는 애플의 전통을 팀쿡이 잘 수행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팀쿡은 탁월한 경영인이며 충분히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고 이는 실질적인 성과로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팀쿡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해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잡스를 기억하는 팬은 여전히 있지만 이미 파트너와 시장은 스티브잡스를 잊고 팀쿡을 숭배하고 있다.

애플와치 미스테리

여러모로 애플의 최근 보여준 신제품 발표의 패턴은 소비자들을 놀라게 하기 위한 이벤트에서 기대를 만족시킬만한 정도의 이벤트로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애플와치는 아마 이번 애플 신제품 발표의 가장 큰 미스테리로 남을 가능성이 많다.

2년이나 준비한 제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뭔가 애매하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가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단순히 발표자의 카리스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애플은 “이 기기는 어떤 것이고 어떤 성능을 갖췄고 누구를 통해 언제 얼마에 유통될 것”이란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애플와치는 웨어러블 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배터리 시간이나 아이폰6와 애플페이와 어떤 방식으로 연동되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센서 기술이나 기타 개발자나 파트너들이 참조할만한 구체적인 정보보다 소비자들에게 기대감만 잔뜩 부풀린 콘셉트 이미지만 발표됐다. 출시시기도 내년 초 정도로 두루뭉술하다. 아마도 시장의 반응을 미리 보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애플의 IoT 등 차세대 분야의 리더십에 대한 조바심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추측해볼 뿐이다.

애플에 대한 워낙 많은 정보가 유통되다보니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를 평가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애플이 향후에도 마니아들을 이끄는 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아이폰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신시켜준 것만으로도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는 ‘또’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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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17:40 2014/09/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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