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응답하라 국회의원(www.heycongress.org) 사이트가 열렸다.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뭐든 이제 움직여라’는 유권자들의 국회의원을 호출하기 위한 시도였다.

4개월 여가 지난 현재, 이 사이트의 목표는 2만 명의 참여와 국회의원 모두의 응답이었지만 고작 20여 명의 국회의원의 두루뭉실한 응답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캠페인은 지속되지 못했다. 영향력 있는 IT인들의 참여도 SNS에서 반짝 일어나다 말았다.

얼마 전 시작된 미국의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를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상징적인 IT 인사들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을 확산시키고 있다. 자발적으로 얼음물을 뒤집어 쓰고는 다음 캠페인을 이어받을 세 명을 지목한다. 지목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똑같이 얼음물을 뒤집어 쓰거나 루게릭병 관련 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대부분은 두 가지를 모두를 수행한다. 이 캠페인은 미국과 밀접하게 일하고 있는 한국의 IT 인사들에게로 며칠만에 전파되어 지금도 확산중이다.

응답하라 국회의원의 맥 빠진 모습과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확산을 동등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두 캠페인의 뚜렷한 차이점은 ICT 분야의 국내 인사들의 현실 참여가 여전히 ‘가볍고 정치적이지 않은’ 부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IT 영향력자들이 따라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첨예한 논란이 있는 분야에 대한 토론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구글, 페이스북은 최근 미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저커버그는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명제 논란과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논란, 개인정보 취급 부실 등의 논란에서도 한국 IT 업계 어른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거의 7, 8년을 실명제에 맞서서 많은 업계 인사들이 싸워왔지만 정작 IT와 문화에 대해 문외한들이 만드는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 바빴다.

정부가 선거 때마다 포털을 압수수색을 벌일 때마다 외국계 업체들의 서버는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놔두고 국내 업체들은 번번히 압수수색을 허용하면서 국내에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극단적인 주장만 살아남았다. 이럴 때마다 IT 분야의 어른들과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은둔하여 제대로 된 업계의 주장을 펼치지도 못했다.

최근의 여성가족부의 게임 규제 논란과 관련해서도 게임계 내부에서 가상사회를 가꾸는 데에만 노력을 쏟다가 현실 규제에 당황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게임계가 제대로 된 내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응축된 힘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한국 IT 분야의 고질병은 자기 비하와 미국과 서구에 대한 자발적 사대주의다. 최근 창업자들이 들고 나오는 창업 아이템은 한국에서든 세계적으로든 독특한 것은 발견하기 힘들고 모두 미국과 중국의 시장 상황을 겉핥기 공부하고는 아이템을 베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고선 투자가 잘 안 이뤄지거나 정책적 지원이 미진하면 "미국 실리콘밸리는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문제"라고 투덜거리는 것이 고작이다. 다음카카오가 합병하면서 영어이름을 쓰기로 했다는 황당한 소식에도 이렇다 할 반응은 없이 IT 인사들은 ‘미국식이 옳고 한국식은 낙후돼 있다’는 식의 발언을 투덜거리듯 내뱉는 것이 전부다.

인터넷을 가상 사회로 보는 관점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인터넷과 현실세계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IT업계 인사들은 자신들이 받은 혜택과 사회적 영향력을 돈 버는 곳에만 쓰지 말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현실세계로 나와 더 강하게 주장하고 더 많은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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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363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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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6 08:14 2014/08/2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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