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KT ‘5일 전쟁’의 승자는?

Column Ring 2012/03/07 09:27 Posted by 그만

2월14일 오후에 IT업계 두 거물이 화해의 악수를 했다. 스마트 TV ‘5일 전쟁’을 벌여온 KT와 삼성전자가 방통위 중재로 합의서에 사인했다. 합의서에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적극 협력하고 △사업자 간 자율 협의체에 스마트 TV 세부 분과를 운영하며 △스마트 TV 산업·정보통신망 투자·가치 제고를 위한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가 국내에 차세대 스마트 TV를 선보이던 날 오전부터 급작스럽게 스마트 웹 서비스를 막았던 KT는 차단 조치를 풀었고, 삼성전자는 KT를 상대로 낸 접속제한 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게 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상황을 보는 이용자는 씁쓸하다. 이용자의 편익이나 편의성은 도외시한 채 사업자들끼리 벌이는 영역 싸움에 일방적으로 볼모가 되어버리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케이블 TV와 공중파 TV의 사례도 그러했다. 그 경우에는 망 사업자인 케이블 TV가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을 전송하는 대가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스마트 TV 차단 사례는 망 사업자가 콘텐츠 서비스 사업자에게 망 사용대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이용자가 헷갈리기에 딱 좋다.

이용자는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든 값싸고 편리하게 소비하려는 욕구가 있지만 사업자들로서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다. 제조사의 인터넷 망을 통한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통신사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 트래픽 과부하에 대한 영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KT가 왜 미리 선조치를 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도드라졌다는 점에서 이번 KT의 강경책에는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OTT 생태계에 깊이 관여하려는 KT의 전략

제조사인 삼성전자로서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왔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TV를 출시하면서 스마트폰처럼 TV에서도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사실상 제조사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앱스토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업자이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통신망 사업자와의 관계 설정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셈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TV 출시 행사에서 “일부 서비스는 직접 콘텐츠를 수급하고 업데이트하는 사실상의 서비스 운영을 하고 있다”라고 스스로 말했다.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TV의 특성을 감안해 인터넷 서비스 처리 속도와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애볼루션 키트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제품을 팔고 나서 제품을 관리하는 ‘애프터 서비스’에서 꾸준히 제품 이용자와 소통해야 하는 ‘온라인 서비스’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KT가 이런 삼성전자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었든, 트래픽 폭주에 의한 소비자 불만이 모두 자신에게 몰렸던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였든 삼성전자의 앱 서비스만을 겨냥해 차단 조치를 내린 것이다. KT가 바라는 것은 망 사용 대가를 직접 받거나 이용자가 내는 요금에서 일정 부분 수익을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다.

인터넷에 직접 접속해 서비스와 콘텐츠를 소비하는 OTT(Over the top:셋톱박스를 통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로, 인터넷에 연결돼 있으면 간편하게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형태의 서비스가 본격 시작되기 전에 생태계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미국의 경우 일반 웹 사이트 트래픽이 전체 다운로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불과하지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이자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트래픽 점유율은 무려 30%에 이른다(닐슨 통계). 특히 최근의 스마트 TV는 3D 기능과 고화질 영상에 최적화된 까닭에 데이터 양 자체가 차원이 다르게 크다는 점에서도 망 사업자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5일간의 싸움. 삼성전자는 망 중립성의 선봉에 서는 명분을 얻었지만 KT는 결국 망 관리권에 대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실리를 챙겼다.

한편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했음에도 대응 능력과 중재 능력에서 심각한 취약성을 보여준 방송통신위원회의 무능력함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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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사IN> 23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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