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 투 잇 STICK TO IT!
장영신

꽤 오래 전에 구로동과 개봉동에서 오랫 동안 살았었다. 거의 3년에 한번씩은 안양천이 범람해 수해 피해도 있었다. 서울 같지 않은 동네. 구로동에 살 때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구린 동네라서 구로동'이라고 했을까. 그렇게 머릿 속에서 그 동네는 낙후된 동네였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우연찮게 구로역 근처에 큰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뭔가 어색한 모습. 지금은 AK 플라자인 애경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애경이란 말이 붙으니 '설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애경'은 내게 그렇게 비누 회사 이미지였다.

오랜만에 책을 손에 들었다.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최근 들어 본연의 '블로거'로서의 활동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뭔가 독서를 시작할 동기가 필요했다.

40년 전 대한민국 여성 CEO 1호라는 타이틀과 함께 비누회사를 맡아 오늘날 제주항공, AK 플라자 등 20개 계열사를 갖춘 연매출 3조7000억원대의 그룹으로 키운 철의 여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길래 '혹' 했다. 물론 '될까' 싶었던 애경백화점의 탄생비화 역시 궁금했다.

순식간에 읽었다. 18일 오전에 받은 책인데 화장실에서 시작해 점심시간과 마침 멀리 외근이 잡힌 바람에 18일 저녁에 다 읽었다. 그만큼 200여 페이지 정도로 내용이 짧기도 짧다.

원래 이런 식의 책은 그다지 내 성향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과 더불어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몇 가지 인생의 팁들이 뒤섞여 있는 자기계발서 부류에는 어쩔 수 없는 '자화자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40년을 두고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글이라면 최소한 인생의 선배로서, 그리고 뭔가 이뤄낸 것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초짜 CEO인 내게는 소중한 조언들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 기대는 6, 70% 정도 충족됐다. 중간중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긴 했지만 이해할 정도였다. '가진 자들은 원래 뭔가 달라도 달라' 식의 이야기가 간간히 섞여 있었지만 최고경영인으로, 그것도 40년 전 가정주부가 여성으로서는 결심하기 힘든 경영 참여 결정을 통해 여러가지 성과를 인생으로 증명해내는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나에게보다 여성 직장인들, 특히 중간간부 이상의 리더십을 배워나가고 발휘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적절할 것 같다. 창의성과 혁신성이 강조되는 세계에 살다보니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인 장영신 전 애경그룹 회장의 따뜻한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경영론에 몰입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주인공은 내 직장 생활 내내 만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여성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한계와 가능성을 체득하여 몸소 실천하는 그런 여성 리더 말이다.

이 책의 덕목은 아무래도 '자서전'적인 성격이지만 '삶의 원칙', '위기 돌파 방법', '처세술', '여성 리더가 갖춰야 하는 따뜻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예전에 다뤘던 [책] 돈은 아름다운 꽃이라는 박현주 이야기 와는 또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렇게 여자라서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하는 상황 앞에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접대문화가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남이 나를 오해한다고 해서 억울해하는 것으로는 감정만 소모할 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접대문화가 불만이면 접대 없이도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오해받는 것이 억울하면 실력으로 내 존재를 증명해 보이면 되는 것이다."
<스틱 투 잇> 162p


요즘 들어 사회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자기비하, 그리고 사회 지도층을 원망하면서도 소망하는 이중적인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그런 사람에게 어쩌면 이 책은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저자가 40년 전 창업주 아내로서 경험없이 경영 일선에 참여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아마도 목구멍에 턱턱 걸리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삶으로 증명해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이 구절을 보면서 나 역시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고 집안이 좋지도 않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도 이런 '증명내고 싶은 욕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는 컴플렉스가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스틱 투 잇에서 자신의 인생을 덤덤히 설명하는 장영신 전 애경그룹 회장에게는 세상의 선입견과 자신의 능력의 한계는 도전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던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후계구도에 대한 구구절절 이런저런 설명을 붙여놓은 것은 서민 입장에서 그다지 아름답게만 보이진 않지만 장 회장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만큼은 충분히 인정할만 한 거 같다.

* 그나저나 이 책 제목은 좀 오버다 싶다. --; 도대체가 책 내용과 맞질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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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13:01 2011/01/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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