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건전지 이야기

Ring Idea 2008/08/31 02:39 Posted by 그만

토끼.

오래가야 하고 힘 세야 하는 건전지와 이미지상 그다지 연관시키기 힘든 캐릭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금기시되는 동물이죠.(왜 그런지는 알아서 생각들 하시길..--;)

그런데 미국에서는 건전지 회사들끼리의 경쟁에 있어서 빼놓기 힘든 캐릭터가 또한 토끼랍니다.

에너자이저와 듀라셀이 핑크 토끼를 놓고 오랫 동안 신경전을 벌였던 것은 마케팅을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꽤 많이 들어보셨을 내용 같습니다.^^

문제부터 나갈까요? 아래 그림은 플리커에서 찾은 그림입니다. 무엇이 틀렸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본 : http://www.flickr.com/photos/littleladylove/2130199110/

... 자, 찾으셨나요?

지역은 미국입니다. 표지판이나 상가 간판에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것을 보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핑크색 토끼를 보고 드리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머릿 속에 핑크색 토끼가 북을 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어느 제품인지는 몰라도 건전지 광고라는 것은 기억하실 것 같은데 말이죠.

정답을 말씀드리면 위 그림의 토끼는 듀라셀 토끼(Duracell bunny, 일명 듀라버니)가 아니라 에너자이저 토끼랍니다.

못믿으시겠다면, ^^ 아래 그림을 확인해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본 : http://www.eyestotheskiesfestival.com/Home/BalloonInformation/tabid/71/Default.aspx

어때요? 분명히 에너자이저죠?

원래 토끼와 건전지의 만남을 시도한 회사는 분명 듀라셀입니다. 다음의 광고를 보세요.

듀라셀 1980년대 광고입니다.



한국어 버전을 볼까요?



이 버전 이후 듀라셀 인형을 이용한 광고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습니다. 핑크색 토끼는 곧 듀라셀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되죠.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듀라셀 토끼를 성공시킨 듀라셀이 제대로 된 일처리를 하지 못해서 핑크색 토끼의 상표권을 빼앗깁니다. 바로 에너자이저였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에너자이저 토끼(Energizer bunny)입니다.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는 듀라셀 토끼를 볼 수 없습니다. 듀라셀 토끼를 봤다면 아마 미국을 제외한 곳일 겁니다.

초기의 에너자이저 토끼가 듀라셀 토끼를 조롱하는 에너자이저 광고를 보시죠.



이후 에너자이저 토끼는 선그라스도 끼고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북을 치며 태연하게 지나가는 컨셉트의 광고를 많이 보여줍니다.



에너자이저 토끼는 듀라셀 토끼보다 귀가 좀더 길고 좀더 성숙한 모습입니다. 참고로 <플레이보이> 잡지가 핑크색 토끼 문양을 선보인 이후로 미국에서는 토끼와 핑크색은 성(性)적인 상징을 지닌 캐릭터로 자리매김합니다. 더구나 '힘 세고 오래가야 하는' 건전지의 캐릭터로서는 제격이죠.

우리나라 기업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토끼를 건전지 캐릭터로 만들지는 못했을 겁니다. ^^

건전지와 성을 연결시킨 광고도 있습니다. 이름하여 '그녀와 토끼, 그리고 건전지와 담배' 동영상입니다.(이런 광고가 정말 방송이 될 수 있나 싶네요. --)

 

듀라셀은 여전히 해외에서 토끼를 활용한 광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방영된(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캐나다 버전 광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내에서 에너자이저가 듀라셀 토끼를 추방시키고 건전지 광고 캐릭터로 자리매김했음에도 맨 앞의 사진에서 잘못 붙여진 제목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캐릭터와 건전지 브랜드와 강하게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초기 에너자이저 토끼가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펼치며 광고에 등장했는데 어이없게도 에너자이저 제품 판매는 제자리인데 듀라셀의 건전지가 더 많이 팔렸다죠.

해외에서는 여전히 듀라셀 토끼가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반해 에너자이저의 해외 마케팅은 오히려 토끼보다 성공적입니다. 바로 이름하여 '백만돌이'가 인기몰이를 했기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만스물하나..' 따위로 시작하는 큰숫자를 자신있게 외쳐대는 백만돌이는 '길고 오래가는'을 상징하며 일본을 비롯한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특히나 더 인기를 모읍니다.

듀라셀 토끼와 에너자이저 토끼를 보면서 캐릭터와 브랜드, 그리고 상품판매까지의 연결고리가 의외로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예를 들어볼까요?

'따봉!'을 외쳤던 광고가 기억나십니까? 당시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 말이었죠.

그런데 썬키스트인지 델몬트인지 아니면 다른 브랜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네. 정답은 '델몬트'입니다.

이 회사는 또 다른 히트작을 얼마 전에 내보냈죠. 이효리의 망고춤, 그리고 '구아바 구아바 망고를 유혹하네'를 부르는 김C. 그러나 그게 무슨 광고인지는 기억에서 이미 멀어졌다죠. ^^;

이효리의 광고 효과는 주목이 충분하지만 비타 1000과 비타 500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하는 소비자로서는 그저 이효리는 망고쥬스와 비타민 음료 광고를 찍은 것으로만 기억을 합니다.

상품과 브랜드, 기업 이름과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온전히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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