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그만은 사회과학계열 전공이었다.
입학하자 생소한 문화를 접하게 된다. 이른 바 '세미나'라는 것이었다.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학과 내에 동아리 역할을 하는 '학회'란 것들이 몇 개 있었으며 각 학회는 주제별로 '연구회' 등의 이름으로 모임을 가졌다. 세미나는 이 학회원들끼리의 토론회 같은 것이었다.
그만은 당시 그 세미나에 흠뻑 빠져 있었다. 매주 1, 2개씩의 주제로 진행되는 이 토론회는 참석 인원이 적게는 3, 4명 그리고 많게는 열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이후 그만은 한글전용에 대한 고집으로 '대거리'라는 단어로 순화시켰지만 여전히 '세미나'란 이름이 대세였다.
당시 이 세미나는 다음과 같은 역할 분담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의 토론이 매번 이어졌다.
■ 간사 : 보통 2, 3학년 선배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 토론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토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또는 토론에 대한 주제를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4학년은 취업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뒤풀이 때만 돈 내주러 오는 착한 '엉아'들이었다.^^
■ 발제자 : 1, 2학년 가운데 지정된 책을 읽고 주어진 영역에서 생각해볼 거리를 만들어 오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지정된 책이나 자유 주제를 놓고 학회의 성격에 맞는 토론 거리를 정해와 토론자들에게 화제를 던졌다. 보통 한 사람이 맡기도 하고 주제별로 토론자와 발제자의 역할이 돌아가기도 했다.
■ 토론자 : 참여자들은 모두 토론자였다. 모두 책을 읽고 온 뒤 토론에 참여하고 치열한 논리 경쟁을 벌이거나 지적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끙끙 거렸다.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토론자부터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내용이 없는 사람, 또는 너무 논리 정연해서 토론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까지 다양한 말투와 논리 전개 방식들이 공중을 가득 채웠다.
나중에는 이 토론자들은 뭔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예를 들면 대부분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하는 느낌이 들까봐 주제를 선정한 뒤 다른 쪽을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찬반 양 진영으로 나뉘어 준비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3시간 정도의 토론을 마치고 나면 뒷풀이가 있었다. 그날 나왔던 주제보다는 친목도모가 주였던 젊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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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4일) 재미있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도 열심히 참여한다고 했지만 그리 스스로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해 마지막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치열한 토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뭔가 틀에 맞춰지지 않다보니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쉬움보다 가능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고 세상은 넓으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처지에서 똑같이(또는 너무 다르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사람과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1차 때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지난 회 때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피부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대충 분위기는 익숙합니다.
일단 IT 업계 종사자들이 토론에 그리 익숙한 분들이 아니구나를 느꼈습니다. 솔직히 많이 어색(^^)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려는 열기는 뜨거웠으나 생각보다 토론이 원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문화일 수도 있고 우리네 정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치열한 토론이라기보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선에서 수긍하고 넘어가려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며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한 사안에 집중해서 뭔가 결과를 도출하려니 정리가 안 돼서 끙끙거리는 모습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끼리의 토론보다는 모니터와의 대화를 더 많이 하는 IT인들이 뭔가 강렬하게 말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좋은 경험이었으며 시스템 엔지니어들, 포털 기획자, 게임 기획자, 기술 전도사, 서비스 운영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뭔가 한 가지 주제로 토론하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어쨌든 후기를 너무 까칠하게 쓰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이 정도로 소감을 마치구요.(^^)
그만과 토론하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며 앞으로 좋은 관계를 지속시켜나가길 바라겠습니다.
* 앞 부분의 이야기는 토론회가 좀더 정교화될 필요가 있는지 이대로 난상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