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단순 소비재의 개념을 넘어서는 공공성이 가미되기 때문에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어떤부분은 적자폭이 있더라도 진행해야될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 표현이라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이율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언어,글등에서 멀티미디어까지 의사소통이라는 전제에서 도구 자체가 완벽한 의미의 전달이라는 것은 이론적인 추구는 분명 존재하지만 도구의 한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을 유도하고 공론화 시키는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끔 관심있는 분야인 촬영기기를 다루는, 이름만대면 알수있는 매체들에서 객원리뷰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얼토당토않은 개인주관(단점은 감추고 장점만 나열된 해당 회사 홍보자료보다 더심하고 근거없는 칭찬일색)적인 견해들을 공적인 매체에서 보여줄때는 짜증이 아주 한없이 날때도 있습니다.차라리 종이신문에서 기획광고라고 상단에 살짝 써놓고 나열한 것은 애교로 봐줄정도로 심해지는 풍토의 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으로도 언론중재위원회같은 기능을 하면서 오보를 제어하고 공론화하는 커다란 커뮤니티나 공공포털등의 서비스를 해주는곳 없나 혹은 해볼까 상상하던 적도 있었지만... 능력부족으로..
공감하다 못해 감정이입까지 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미디어 종사자로서 님의 글에 표현된 처럼, 곳곳에서 정말 많은 패러독스와 딜레마에 빠집니다. 대중의 이중적인 잣대. 님께서 언급하신 것 처럼 시청자의 반응을 높이고 시청률 올리는 작업은 대중이 생각하는 공공재로서의 프로그램 만들기 보다 쉽습니다. 여기서 딜레마인것은 공공재의 역할이 강조되다 보면 시청률 저하와 제작비 압박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이중적인 잣대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나름 이런저런 고민을 합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선택권이 커진 이 시대에 미디어 종사자는 어떤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임할 것인지를 놓고 말이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민의 단초에 도움이 됩니다.
미디어와 인터넷 산업전반에 사용자 Attention의 희소성에 대한 위기는 업계 종사자라면 하루가 다르게 체감하고 있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 현실은 차지하고라도, -그만님도 본문중에 은연중에 내비쳤다시피- 유독 우리의 '미디어'에만 근본적인 이율배반의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인식을 지배하는 가장 가까운 진리는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바로 '부조리'입니다. 제가 한 이야기는 아니고...^^ A. 카뮈가 그랬죠.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를 바로 부조리라고 규정했죠. 문제로 인식하셨던 부분에 대한 답은 저도 그만님도 카뮈도 못 드릴겁니다. 대신 원리를 아셨으니 고민이라도 해소하시길 바랄뿐입니다. 다행스러운것은 카뮈도 덧붙혔듯이 '부조리한 세계에 대래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회복한다'고 했으니... 현실에서도 그 '가치' 추구를 고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원래 우리는 부조리하고 부조리하며 부조리하게 살고 있다고 인정하면 조금 편해 지실 것 같습니다.
A. 카뮈의 말이 내포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요. 이미 정해진 결과가 있다거나 이미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도전하는 인간들. 인간들 스스로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또 다른 시각이겠죠. 좋은 말씀 감사하구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지만 다행히 그렇게 아는 것이 늘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 전반을 지배하지는 않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